서울둘레걷기(완)

서울둘레길 아흐렛날

돗가비 2014. 8. 24. 17:55

140824. 맑음.

도봉산역→도봉탐방지원센터→무수골→정의공주묘→연산군묘→우이령길 입구→손병희선생묘역→솔밭근린공원→국립4.19민주화묘지→보광사→백련탐방지원센터

쉬엄쉬엄 내 멋대로 걷는 서울둘레길. 걷는 시간도 쉬는 시간도 멋대로이다보니 날도 여러 날이 걸린다. 지도 없이 걷는다.

도봉산역에 하차하여 도봉산탐방지원센터를 거쳐 북한산둘레길을 걷는 길이 서울둘레길이다. 그래서 따로 지도를 들지 않아도 제대로 갈 수가 있다. 길은 흙길에 국립공원답게 잘 다듬어져 있으며 안내판 또한 빈틈없이 서 있다. 더운 날씨지만 그늘을 걷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덥지도 않았고 중간에 하도 많이 쉬어서 시간개념도 없는 하루였다.

도봉산을 들어서면서 둘레길을 따라 걷다보면 얼마 걸리지 않는 초입에 서 있는 문인상.

잘 다듬어진 둘레길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영화를 회상하듯 서 있는 문인산은 누구의 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주인을 잃고 서 있는 문인상이 인상에 남는다. 길 건너에 앙상하게 변해버린 묘 하나가 주인일지? 저런 문인상을 세울 정도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세도를 부릴만 하건만 지금은 후손도 없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權不十年이라 했던가. 있던 자와 없던 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말 인생은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 조각의 구름과 같은 것을.

명문세가의 전형인 진주윤씨의 묘역.

한때는 천하를 호령했을 법한 세도가의 묘역이 거창하게 조성되어 있다. 오늘 이 구간에는 한 시절 세상을 풍미했을 법한 많은 인사들의 묘가 즐비한 곳이다. 이역만리 만주땅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묘가 들어 서 있는 곳이고 두 번의 사화를 일으켜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던 연산군의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길을 가는 내내 잘 다듬어진 묘가 있고 손이 끊겨 비에 씻겨 점차 흔적이 사라지는 묘가 여럿이다. 인생무상이라. 사람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죽어서는 다 같은건데...

길을 걷다보면 사람사는 재미를 제대로 느끼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 흐믓하다. 김장용 무우밭에 우산을 몇 개 세워 놓았는데 왜일까? 허수아비대용일까? 사람사는 건 참 가지가지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많은 해답이 있을 뿐이라고 하는 말이 실감나는게 이런거다. 그래 사는데 무슨 답이 있겠는가. 각자 알아서 사는게지.

도봉산의 맑은 물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는 행복할까? 자기의 삶이 만족스러울까? 강남의 부유한 아이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누라와 나누면서 결론을 내렸다. 저 아이는 지금 저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맑은 물과 맑은 공기를 친구삼고 뒷산을 놀이터 삼아 뛰어노는 저 아이는 누구도 부럽지 않을 아이라고. 나도 저렇게 놀고 싶다고.

길가에 흘러내리는 토사를 막아주는 나무기둥. 아이디어 좋고 주변에 어울려서 참 좋다. 그냥 콘크리트 가져다 들이부어 담을 쌓지 않아서 좋다.

쌍둥이전망대에서 그냥 인증샷이랄까. 멀리는 도봉산의 봉우리가 보인다. 이곳에서는 도봉산과 삼각산이 훤히 보인다. 지나는 길에 한번은 올라가 볼만한 구경거리겠다. 그러면서 북한산둘레길 그래 서울둘레길의 일부구간은 계속 이어진다. 편하고 좋은 흙길을 계속 걷는다. 정의공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곳은 세종의 딸이자 문종의 누이동생이요 세조의 누나인 정의공주가 묻혀 있는 곳이다.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되었든 공주로 태어나 좋은 곳으로 시집가서 평생을 부와 권세를 누리면서 살았을 것이다. 사진에 먼 곳은 사천목씨 재실이다. 사천목씨는 명성과 큰 인물을 배출한 가문으로 봤을 때 후손이 극히 적다. 배출한 큰 인물로만 보면 어지간한 큰 성씨들보다 낫다. 이곳에서 큰 길을 건너면 연산군을 만나게 된다.

연산군묘역.

맨 위에 묘가 연산군과 비의 묘이고 그 아래는 태종의 후궁에 묘라는데 왜 여기에 있는지는 참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맨 아래는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묘이다. 권력을 잡은 자와 빼앗긴 자의 차이를 바로 알 수가 있다. 역사는 승자의 몫이다. 그리고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정권을 잡기 위한 모략과 술수가 판을 치고 있다. 연산군은 여느 왕들과 다름없는 한 명의 왕일뿐이다. 다른 왕은 왕이고 연산군은 왕자의 서열로 낮추어진 현실이지만 단지 정권을 유지하지 못하고 침탈당한 한 명의 군주인 것이다. 그때 정변이 실패했다면 중종이하 많은 사람은 이승을 하직했을것이요 연산군은 더욱 막강한 왕권을 쥐었을 것이다.

천도교의창수도원. 이 안에 봉황각이라는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건물이 위치하고 있나보다. 이런 역사적인 현장을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1912년 의암 손병희 선생이 세운 것이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찾기 위해 천도교 지도자를 훈련시킨 곳으로 의창수도원이라고도 부른다. 봉황각이란 이름은 천도교 교조 최제우가 남긴 시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을 딴 것이다. 현재 걸려있는 현판은 오세창이 썼다. 손병희 선생은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천도교의 신앙생활을 심어주는 한편,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수련장으로 이 집을 지었다. 1919년 3·1운동의 구상도 이곳에서 했으며, 이곳을 거쳐간 지도자들이 3·1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봉황각과 부속 건물에는 그 당시의 유물이 남아있고 이곳 앞쪽 약 50m 지점에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있다.

길을 걷다보면 두동강난 문인석도 지나치게 된다. 세월의 흐름을 누가 막겠는가.

우이동솔밭공원. 도시에 이런 공원 하나 갖고 있는 지역주민은 행복하겠다. 누구나 뛰어놀고 앉아서 책을 보고 제각각이다. 자유롭다.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다. 부럽다.

국립4.19공원묘지. 이곳은 앞으로가 아니고 뒤로 지나가게 된다. 사진속의 노인분은 묘에 가서 술을 따르고 경건하게 참배를 한다. 그곳에 묻힌 인물은 누굴까?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에 묻힌 애국지사들의 묘소가 있는 위치도이다. 순국선열들에 대한 묵념.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지나 온 길을 묻으면서. 그리고 기억도 모두 날려버리면서 하루를 마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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