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옥당골로 찾아들어

안마도(鞍馬島) 산봉(山峰)

돗가비 2009. 8. 21. 11:31

안마도(鞍馬島) 산봉(山峰)(안마도 동촌마을)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전(1780년) 안마도(鞍馬島) 동
촌(東村)마을에 살았던 申氏 할머니의 꿈에 "나는 나라 장군인데 한번도 출전을 못해서 이곳 북쪽 산너머(현 당너머) 선창가에 와 있으니, 나를 이곳 산봉우리에 묻고 매년 설날이면 농악을 쳐 제를 지내 달라"고 했다.

이상한 꿈에서 깨어난 신씨할머니는 이 사실을 동네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 말을 들은 동네사람들이 그곳으로 가 보았더니 선창가에 이상한 상자(궤짝)하나가 있었다. 그속에는 1m이상 되는 긴 여자 머리털과 큰 주머니(중국 주화가 들어 있었음)와 철마(鐵馬) 2匹(큰 주먹 보다 조금 큰) 등이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신씨할머니의 꿈을 좇아 산봉우리에다
큰 항아릴를 땅에 묻고 이 상자를 넣어 두었다. 또 주위에 동백나무를 심고 당산봉우리라 이름하였다. 해마다 설날에는 이곳 섬 주민들은 안마도 동촌(東村)마을을 큰 아들, 신기(新基)마을을 둘째아들, 월촌(月村)마을을 막내딸로 정해 이 마을의 액운과 재앙을 없애 달라고 지성으로 빌었다.

이때 당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징으로 큰 대통나무 2
개(길이가 50m, 반지름 6cm, 가로 12m)에 동배나무가 잎을 꽂은 다음, 흰 광목천으로 대통나무 전체를 감아

내리고 천 끝에는 긴 머리털과 큰 주머니를 단다. 이 대통나무를 모시는 사람은 대나무 하나에 2명씩 4명인데,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주관하게 된다.

제물(祭物)로는 깨뜻한 집의 수소를 잡아 올린다. 매
끈이(끼니)마다 밥을 차려 놓고 농악으로 제를 지낸다. 제물(祭物)을 바친 후 치는 농악은 동촌마을에서 치고, 당산봉우리에 가 당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징인 대통나무를 모시고 내려와서 섣달 그믐날 밤과 초하루까지 잔다. 초이튿날은 둘째 아들인 신기마을에서 농악을 치면서 동촌으로 가서 신(神)을 모셔와 밤을 샌다. 초사흘날은 막내딸인 월촌으로 모시고 가 하룻밤을 잔다. 초나흗날은 3개마을 농악대가 전부 합세하여 큰 집 동촌(東村)으로 모신후 그곳에서도 하룻밤을 더 잔다. 초닷새날은 당산봉우리에 올라가서 神

을 당항아리에 모신 후 대통나무 2개만 가지고 내려와 동촌마을에서 다음해까지 정중히 모셔둔다.

옛날에 당산봉우리쪽에다 소변을 하거나 침을 뱉으
면, 성기와 입술이 부었다고 한다. 한번은 송이도(松耳島) 사람들이 배를 타고 「철마」를 당산봉우리에서 훔쳐가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움직이지 않자, 당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노여움을 사서 그런다고 뉘우치고 제자리로 갖다 놓았다 한다.

이러한 당제사는 '68년까지 이어 왔으나, 당봉우리에
해군기지가 설치'(69년)되면서부터 제(祭)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안마도(鞍馬島)는 정월과 6월, 연 2

회에 걸쳐 동촌(東村), 신기(新基), 월촌(月村) 주민들이 주가 되어 산제(山祭)와 당산제(堂山祭)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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