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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돗가비 2016. 6. 1. 22:07

160528.

행궁터는 2007년 4월 1일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었다. 한국의 행궁(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던 곳으로, 수원 화성(:사적 3)의 부속물이다. 1796년(조선 정조 20)에 화성을 축성한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576칸 규모로 건립하였으며, 그 전까지는 1789년(정조 13) 수원읍치를 화산에서 팔달산으로 옮기면서 관아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부왕 장조(:장헌세자)의 능침()인 화산릉()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행궁에서 쉬어갔다. 당시에는 봉수당()과 경룡관()·복내당()·유여택()·노래당()·신풍루()·남북군영·강무당()·무고()·수성고()·집사청()·서사청()·비장청()·우화관()·득중정()·행각()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화성행궁의 주건물인 봉수당에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훼손되고 낙남헌()만 남게 되었다. 봉수당의 원래 이름은 정남헌인데, 정조가 모친 혜경궁홍씨(경의왕후)의 회갑연을 이곳에서 베푼 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봉수당으로 불렀다. 낙남헌은 봉수당 북쪽에 있던 ㄱ자 건물인데 노래당과 함께 곱은 ㄱ자형으로 배치된 초익공() 양식의 팔작지붕집인데, 지금은 꺾인 부분이 잘리어 없어지고 자형의 건물로 바뀌었다.

1975년 화성 복원 결정과 함께 행궁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6년 화성축성 200주년을 맞아 수원시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복원공사를 시작하였고, 2003년 7월 말 봉수당, 득중정, 궁녀와 군인들의 숙소 등 482칸의 복원을 완료한 1단계 공사가 끝났다. 이어 10월 9일 화성행궁 21개 건물 중 18개 건물과 정조의 영전(殿)인 화령전 등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개관식을 가졌다.
2010년까지 이어질 2단계 사업에서는 신풍초등학교가 위치한 우화관과 맞은편에 위치한 별주, 내포사 등 화성행궁의 나머지 3개 건물 94칸과 행궁담장 등을 복원하여 세계적인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1790년에 세운 2층 구조의 6칸 규모 누문()이며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아래층엔 세 개의 판문이 달린 통행문이 있고, 위층엔 누마루가 있다. 처음에는 진남루()라 하였으나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신풍루()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한고조 유방의 고향 풍패()로부터 비롯된 이름으로 정조가 화성을 고향처럼 여긴다는 의미이다. 1795년 을묘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 신풍루 앞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는 진휼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중양문.

궁궐에 설치하는 삼문() 중,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바로 앞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으로 1790년(정조 14)에 완성하였다. 가운데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좌협문으로 이루어지며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문 좌우로 긴 행각()을 설치하였다. 1795년에 이곳에서 헌경왕후(, 혜경궁홍씨)의 회갑연 진찬례가 열렸다.


봉수당.

장남헌()이라고도 한다. 화성 행궁의 정전(殿) 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1789년(정조 13) 8월 19일 상량하여 같은 해 9월 25일 완공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7년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봉수당()이라는 건물 이름은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으로 정조가 헌경왕후(, 혜경궁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지었으며, 뒤에 돈령부지사를 지낸 조윤형(, 1725~1799)이 편액을 썼다. 1795년(정조 19) 이곳에서 헌경왕후의 회갑연인 진찬례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경룡관.

경룡관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도 사용한 부속 건물이다. '경룡'이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하는 것으로 당태종이 거처한 궁궐 이름에서 따 왔다. 정조는 당태종의 궁궐 이름을 차용한 이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며 조선의 태평성세를 구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1794년(정조 18)에 세워진 경룡관을 2층 구조로 건물의 2층은 모두 마루를 깔아 누마루를 만들고, 아래층은 3칸의 널문을 만들어 '지락문(至樂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어천문.

득한문. 벽에는 행차 당시의 모습을 그린 의궤가 그려져 있다.

제정. 제사에 사용하는 물을 뜨는 우물.

운한각.

화령전(華寧殿)은 사적 제115호로 1801년(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影殿)이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달리 영전은 보통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생전에 계실 때와 같이 봉안하는 곳이다.

풍화당.

운한각.

득중정. 

득중정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로 편액을 정조가 직접 써서 걸었고, 상량문은 홍양호가 짓고 썼다. 정조는 행차시에 매번 활쏘기를 하였는데, 1790년(정조 14)에 새로 만들어진 이 정자에서 활을 4발 쏘아 4발 모두 맞히고는 이를 기념하여 '득중정'이라고 한 것이다.

득중정은 "활을 쏘아 맞으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맞지 않으면 제후가 될 수 없다(射中 則得爲諸侯 射不中 則不得爲諸侯)" 라고 한 구절에서 '득'자와 '중'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득중정 앞의 고목과 낙남헌

내포사.

미로한정.

미로한정은 행궁 후원(後苑)에 만든 정자이다. 후원 서쪽 담안에 있었는데 미로한정이라는 말은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다. 노래당과 함께 갑자년(1804)에 세자에게 양위(讓位)하고 화성으로 가리라던 정조의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1790년(정조 14)에 세워 졌는데 1칸 6각정으로 '육면정(六面停)'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는 수원 추팔경의 하나인 한정품국(閒亭品菊 : 국화꽃 벌여놓고 황상하는 미로한정의 가을 풍경)의 경관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미로한정을 지나는 길의 소나무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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