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614. 맑음. 둘이서.
일원역(버스로 세상구경)-수서역-탄천-장지천-장지근린공원-문정근린공원-성내천-올림픽공원역까지.
서울둘레길을 걷는데 지도가 무슨 필요하랴. 그냥 걸으면 그만인 것을.
드넓은 서울 땅을 밟으면서 정해진 길따라 걷는다면 더 지루하고 재미없을것이라.
그냥 걸어라. 지도도 없이 두 발로 그냥 걸으면 된다. 그렇다고 방향감각도 없이 무턱대고 걸을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충 남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그러다 내 가고 싶은 길이 생기면 그곳으로 가면 그만이리라. 방향은 유지하되 백두대간종주하듯 길을 고집하지는 말자는 말이다. 지름길로 가로지르면 어떻고 빙둘러가면 어떻다고 표지판을 고집하겠는가.
저번 날에 일원역에서 마감을 하고 오늘은 이어 가는 날이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나섰으니 그곳을 지나는데 이를 즈음에 마누라가 빙그레 물어본다. "어디서 내릴거냐"고. 내가 "일원역에서 내리지"하니 웃으며 그런다. "수서역에서 내릴려고 그러지"하고.
이런 내 마음을 꽤뚫어본다. 여시같은 마누라하곤. 집에 여유를 한 마리 키우고 사는 셈이다. 그것도 영악한 여우를. 그래 미련한 곰하고는 못살아도 여우하고는 산다고 했다던가. 그런 마누라가 이쁘다. 항상 마음이 통해서 ㅎㅎㅎ
대모산을 걷는 길을 조금 축지법으로 단축했으니 오늘 그곳으로 올라가야 한단말인가? 그곳만이 서울인가? 아니지. 그리 따지고 들자면 서울둘레길을 시경계로 마냥 걸어야겠지. 그래 사람사는 길을 가는 게 사람이지. 그냥 걸으면 된다.
山自分水嶺이라. 산은 물을 건널 수 없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백두대간을 하다 보면 수시로 듣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사람만 그대로 두겠는가. 온 산천이 다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산허리가 잘리고 물길이 막힌지가 오래이다. 백두대간은 그나마 보존을 하느라고 하여 존재감이 있지만 대부분의 종주산행길도 아파트가 들어서고 길이 뚫리우고 물길이 다른 곳으로 틀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도시길을 걸으며 고집할 이유는 하나도 없겠다. 이게 나의 변명이다.
자 이제 출발해보자.
일원역에서는 궁마을을 지나 수서역이다. 지하철역 하나 구간이니 얼마나될까? 그래 이 길은 버스로 가보는 거다.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누가 뭐라겠어.
수서역에서 내려 잠시 헤매이다가 방향을 잡고 탄천으로 간다.
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서 어미오리가 새끼를 데리고 가는 모습이 귀여워서 쳐다본다.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마누라를 쳐다본다. 같다. 자연생태하천으로 관리하는 곳이라서인지 그냥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제 멋대로 자리잡은게 너무 고맙다. 콘크리트로 쳐발라 놓은 여느 곳의 하천보다 더 멋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탄천을 따라 걷다보니 서울둘레길표지는 아예 없는 곳인가보고 송파구에서 만든 워터웨이간판만 보인다. 길을 헤매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싶은 맘이지만 어딘들 못 걸어가리오. 그냥 걸으면되는 길이니 걷다보면 다리가 아플게고 그곳에서 쉬어가면 되리라.
근데 왜 워터웨이일까? 그냥 송파물길이라고 하면 안될까? 길마저도 모두 영어로 만들어야 럭셔리하게 보여서일까? 워터웨이하며 그린웨이하며 참 꼴사납기도하거니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걷는 길마저도 유명세를 타기 위해 이름을 짓고 이용해보려는 사람들의 속마음이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길을 걷는다. 탄천을 따라서...
탄천을 따라 걷다보니 장지천이라는 곳을 만나게 된다. 탄천을 따르던 길을 그만 접고 이젠 장지천을 따라 걸어본다.
장지천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거니와 물론 처음 와보는 곳이다. 아주 작은 하천인데 잘 정돈되어 있다. 탄천과는 아주 딴판인데 그대로 방치했으면 지저분한 하천이었을 곳인데 잘 정비한곳 같다. 탄천처럼 큰 하천은 자연그대로 두어서 좋고 장지천은 잘 가꾸어서 좋다. 아주 작은 하천은 자생능력이 부족해서 잘못하면 시궁창으로 변해버리거든.
꽃들이 예쁘다. 물론 마누라는 더 예쁘다. 장지천을 걷다보니 끝나는 곳이 나오고 사람이 더 걷기엔 거북스럽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을 따라 걸으니 무슨 군부대로 들어가는 곳이 나오게 되고 우린 되돌아서 가드레일을 넘어 숲으로 들어선다. 장지근린공원이란다. 장지근린공원을 걸어 문정근린공원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더 걸어가면 성내천을 만나게 된다.
성내천에서는 벼룩시장이 선다. 벼룩시장이란 말이 어떻게 생겼을까? 그래서 찾아봤다.
벼룩시장은 원래 유럽 야시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래된 물건이나 중고용품을 직접 사고 파는 장소를 말한다. 벼룩시장이 처음 생겨난 프랑스에서는 '마르셰 오 뿌쎄'라 부른다. 프랑스 파리에는 시에서 일정한 자리를 할당받는 '정규 벼룩'과 '무허가 벼룩'들이 한쪽 귀퉁이에서 각자의 물건을 내놓고 파는데 경찰이 단속을 나오면 무허가 벼룩들이 반대편에 가서 물건을 팔거나 감쪽같이 없어졌다가 경찰이 가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벼룩이 튀는 것 같다고 해서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로는 프랑스어 '뿌셰(Puces)'가 '벼룩'이라는 뜻 외에 '암갈색'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암갈색의 오래된 가구나 골동품을 파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 벼룩시장에서는 중고물품을 팔아야 벼룩시장이다. 서초구청에서 주관하는 방배동복개천벼룩시장은 벼룩시장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장사치들의 돗데기시자이 되버렸다. 차에다 물건을 잔뜩 실어와서 진열하고 파는 게 무슨 벼룩시장인가. 그곳은 본래의 용처대로 그냥 주차장으로 되돌려야 한다. 그게 서초주민들의 편의를 위하는 길일게다.
성내천의 벼룩시장은 집에서 쓰다 내다파는 물건들이다. 가격도 1,2천원이니 얼마나 착한 가격인가.
성내천에 가면 명물이 또 하나 있으니 잉어떼이다. 팔뚝만한 잉어가 한두마리도 아니고 수백 수천은 될 것이니 명물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남녀노소 누구나가 좋아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애들이 먹이를 주며 좋아하는 모습에 어른들도 덩달아 좋아지는 이 기분. 그런데 머릿속에서 저거 한마리 건져다가 잉어찜 해먹으면 어떤 맛일까하는 이 몹쓸 심보는 어찌 다스려야한단 말인가. 마누라한테 농담했다가 욕만 먹었다.
참 사람들이 착하다. 저렇게 잉어가 득시글거리는데 잡아가지 않으니...설마 못 먹는 잉어는 아니겠지?
성내천을 따라 걷다 보기 어려운 장면을 보게 된다. 저 새는 무슨 새일까요? 백로일겁니다. 왜가리일까요?
백로가 물고기를 잡아 먹는 장면입니다. 보기에도 꽤나 큰 물고기를 한번에 삼키지 못하고 덜컥덜컥 거리면서 몇 번에 걸쳐 삼키네요. 물고기가 많다는 것은 하천이 살아있다는 증거겠죠. 하지만 그렇게 글을 쓰려니 옥에 티가 보이네요. 물속의 페트병이...
그래도 성내천은 살아 있습니다. 맑고 깨끗합니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것은 그것을 증명하고 남습니다. 가장 자기 이익을 챙길줄 아는 사람들이 더럽고 냄새나고 싫다면 오겠습니까. 그렇죠. 성내천은 앞으로도 갈수록 더 좋아지고 살아날 겁니다.
올림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북2문에 도착해보니 올림픽공원역은 옆으로 지나쳤나보네요. 안그래도 오늘의 종착지는 이곳입니다. 오뉴월 땡볕에 더 걸어서 뭐하겠습니까. 적당히 걸어야죠. 몽촌토성공원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커다란 분수도 있고 그늘도 많아서 놀기 좋습니다. 정말 아름답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가족나들이로는 제격이겠더군요. 물론 데이트하는 남녀도 많습니다. 우리도 데이트했습니다. 길다방커피도 마시면서 쉬었다 왔습니다. 난 스타**나 커피**다 하는 커피를 아주아주 싫어합니다. 너무 가격에 거품이 많거든요. 그래서 지금 날까지 스타**에 한번도 가 본적이 없답니다. 그런 커피집은 탐앤**에 딱 한번 가봤네요. 왜냐면 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든요. 난 파리지앵도 그리고 뉴요커도 아니거든요. 그냥 서양철학보다는 동양철학을 좋아하고 물들어 있는 한국사람이랍니다. 물론 커피 한잔에 무슨 철학이다 뭐다 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게 더 우습고 조잡스런 일이 되겠지요. 그냥 필요에 의해서랍니다. 내가 필요하다면 뭔들 못하겠나이까. 방구뀌고 똥싸고 살면서 남들처럼 살면 되는거지 별나게 굴자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편하게 사람답게 살면 되겠다싶어서요. 남에게 해끼치지 않고요.
오늘은 어찌어찌 걸었나볼까요. 서울둘레길은 지도가 필요치 않답니다. 발길닿는대로 걸으니까요.
수서역에서 탄천을 따라 걷다가 장지천을 따라 걷게 되어버렸네요. 장지천을 벗어나서 장지근린공원을 걷게 되었고 다시 문정근린공원을 걸었답니다. 길을 찾아 나서서 성내천으로 들어섭니다. 성내천을 따라 걸어보니 올림픽공원에 몽촌토성이 있는 올림픽공원역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북문으로 들어가서 몽촌토성을 둘러 돌아서 남문으로 빠져 나옵니다. 그리고 아주아주 높이 올라가고 있는 제2롯데월드라던가 하는 곳을 거쳐 잠실역까지 걸었습니다. 몽촌토성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되는데 2호선으로 갈아타기 싫어서 그냥 잠실역까지 걸었으니 그것도 서울둘레길인게죠. 어디는 서울아니겠습니까. 온나라가 다 서울처럼 되버린 세상인데요. 시골 산골짜기에도 아파트가 들어서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세상. 경제적논리에 합당한건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냥 누군가를 봉으로 만들면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짬뽕을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