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24. 맑음. 마누라와 동행.
우면산 임광아파트삼거리-우면산-양재 시민의 숲-구룡산-대모산-일원역까지
서울에 살면서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봉우리 55개의 산을 잇는 종주산행은 진즉에 마무리 한바가 있어 서울,경기에 산들에 대해서는 시무룩하던 참이다. 서울둘레길이 생겨 내가 살고 있는 우면산자락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던만 난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냈다. 하던차에 산에 다니던 맘도 시들해지고 또한 의욕도 없이 지내고 있다. 매번 우면산과 관악산만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건강관리차원에서 산속에 들곤 했는데 뭔가 새로운 길도 걸어보고 싶은 맘이 생겨 서울둘레길을 우선 택해 본다. 뭐 얼마 전에 서울대까지 걸었다가 말았으니 오늘이 두번 째가 정확하겠다.
대략 전체적인 지도를 보면 둘레길은 산봉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사람이 부대끼며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고 산도 허리를 휘감아 돌면서 서울의 한 바퀴를 돌아보는 모양이다. 그래서 마누라를 동행시키기로 했다. 서울에 살면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만 쳐다볼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변도 둘러보는 것도 나쁠 일은 아니라 싶어서이다. 솔직히 둘레길에서 참 아름답다고 느낄만한 경치가 몇 군데나 되리오마는 그냥 사람사는 구경이나 하고싶어 걸어 본다면 어떨까 싶다. 길을 걸으며 사람사는 냄새와 숨어있는 역사의 현장과 기록물을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할게다. 그래서 기록이나 사진도 풍경보다는 그런 쪽으로 한두장 남기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냥 지나치리라.
어느 언론사의 서울둘레길 소개를 살펴보자.
서울에서 가장 대표적인 길이다. 내·외사산을 연결하는 순환코스를 정비했다. 즉 관악산과 북한산, 대모산, 수락산, 봉산, 아차산 등을 이어 서울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코스. 총 길이 157㎞로 이루어졌다.
가장 큰 특징은 1000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체험은 물론, 자연생태계를 탐방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코스 대부분이 숲길과 마을길, 하천길로 이루어져있어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그와 함께 선사시대에서부터 고구려, 백제,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다양한 자연과 역사, 문화를 보고 즐길 수 있다. 하루에 8시간씩, 한 시간에 2㎞씩 산길을 산책한다고 가정할 때 한 바퀴 완주하는 데 모두 10일 정도가 소요된다. 특히 각 코스 시작 가까운 곳에 전철역이 위치하고 있어 찾아가기도 매우 편리하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우선 시작은 우면산이다. 내가 사는 곳이 우면산 아랫 동네라서 예술의 전당 뒷쪽으로 오른다. 집을 나서면서 가느다란 비가 내려 몇 번이나 망설이면서 주변을 돌다가 맘을 고쳐 먹고 걷기로 해서 산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 길은 내가 수백번은 오르내린 길이라서 좋다. 그리고 수많은 산을 다녀봤지만 우면산만큼 좋은 산도 많지가 않다. 길은 흙길이라서 편하고 경사가 완만하고 산에 오르면 주변 경치 또한 볼거리가 많아 좋다. 그리고 서울에 붙어 있으면서도 어찌 그리 숲이 우거진 곳이 많은지 모르겠다. 어떤 곳은 강원도 오지의 깊은 산속에 들어선 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우면산이 좋다. 산책하기에도 두서시간을 걸으면서 부부가 걸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길이 우면산길이다.
우면산을 오르면서 비가 그치고 둘레길 표지만 보고 따라간다. 예술의 전당을 뒤로 하고 서울시공무원연수원인가 철조망을 따라 걷는 길인데 이쪽 길은 처음 걸어본다. 매번 소망탑이 있는 정상과 사당쪽과 과천방향으로만 걸었었는데 새롭다. 길은 편하고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주어 최상의 컨디션이다. 맑은 날씨와 상쾌한 바람이 있는데 더 바라겠는가. 그냥 걸으면 좋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더 걷다보니 양재천변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또 걷고 하는 게 보인다. 다리를 건너니 양재시민의 숲이다. 애들이 어려서 몇 번 놀러왔었는데 하는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사진의 매헌기념관을 지나게 된다. 매헌 윤봉길의사는 너무나 유명한 분이고 독립투사이기에 설명해서 무엇하리요. 혹시라도 지나갈 길이라면 한번쯤 둘러보는 감각도 필요하다. 특히나 어린애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봐야 할 곳이다.
유격백마부대충혼탑.
매헌기념관을 나와서 길을 건너면 탑이 나오더라. 시민의숲속에 있는데 잘 정돈된 모양새이다. 아무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사진도 남기고 지나친다. 시민의숲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이나 그래도 이런 조형물이 어디 여기뿐이랴. 생뚱맞은 조형물이 널려있으니 그나마 여기는 주변 숲과 잘 정돈되어 낫다.
민간항공기 버마상공 피격 희생자 위령탑.
역사적 사실은 잘 모르겠다. 이게 김현희사건과 관련된 희생자들의 위령탑이란 말인가? 여기 또한 잘 다듬어지고 가꾸어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쉼터가 잘 만들어져 있었고 우리 또한 평상을 찾아 점심을 해결한다. 그런데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고속도로의 소음이 밥맛을 다 달아나게 만든다. 부랴부랴 밥을 먹고 서둘러서 일어설 수 밖에.
위령탑 주변에서는 어느 단체인지 학교인지는 모르겠지만 색다른 행사를 하고 있다. 패션쇼는 아니고 동화책에나 나옴직한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분장을 하고 그렇게 놀고 있다. 어른들은 시큰둥한 얼굴로 쳐다보지만 주변에 놀러 온 애들은 신이나서 따라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도 가지가지라, 뭐가 좋고 나쁜것이며 뭐가 옳고 그른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가볍게 바라보면서 생기발랄하게 웃고 떠드는 그 사람들이 좋아 보였다. 사는데 너무 묵직하고 올곧은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니까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여자애들이 이쁘지는 않은데 웃는 모습들이 남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듯.
구룡산과 대모산의 경계 언덕의 이정표.
양재시민의숲을 나오면서는 어찌어찌하여 큰 길을 건너고 구룡산으로 들어선다. 구룡산 산자락의 일부를 끼고 걷다가 산허리를 굽이 돌다가 하면서 즐겁게 걸으면 된다. 숲도 우거지고 길도 좋다. 아래로 지나가는 차소리만 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겠다. 가다가 쉬다가 걷다가 놀다가 그리그리 걸으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개암약수터. 물이 약하게 나오는데 먹어보니 시원하다. 꽤나 오래되었음을 알려주는 개암약수터 표지판이 돌에 새겨져 서 있다. 주변은 약간의 운동기구와 쉼터가 만들어져 있는 게 역시 강남이구나 싶다. 인상적인 것은 약수터에 물을 받는 자리가 아주 색다른데 바닥을 넓지 않고 좁게 만들었고 약간 비틀어져 있다. 여기에 지혜가 숨어 있는 게 큰 통으로 물을 받으러 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은 아닐까한다. 그냥 생수병을 놓고 받기에는 딱 좋게 만들었는데 커다란 통은 들어가지가 않게 되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딱 쉬어가기에 좋은 곳이 개암약수터이더라.
쉬었으니 다시 걸어야 할게다. 뭐 걷다보면 끝이 보이리라. 길은 편하고 좋으니 염려가 없다. 흙이 부드럽고 숲이 우거져서 더운 날에도 걱정이 없다. 마누라하고 도란거리면서 걷다보면 금새 한 굽이 길을 걷는다. 구령산에서 대모산으로 접어들면서는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간간이 빗방울도 한두방울 보이기 시작하더라. 대모산을 지나 수서역까지 갈것인가 말것인가? 길을 따라 걷다 불국사로 들어가는 길의 갈림길에서 내려서다 보니 일원역으로 하산하는 너른 길로 접어들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무래도 비가 내릴 기세이다. 그런데 비는 오지 않는다. 괜히 내려왔다하다가도 하늘을 보면 비가 올듯하니 어떤 게 좋을지는 지나봐야 알리라. 제대로 도로가 나오면서는 길가에 할머니 한 분이 약간의 푼거리를 팔고 계신다. 마누라는 그냥 지나치는 것을 내가 불러세우고 할머니에게 아욱과 상추를 조금 달라고 했다. 아욱을 2천원이라면서 다듬지 않고 남아 있던 것까지 듬뿍 담으신다. 상추 천원어치에는 쑥갓까지 푸지게도 담아주시면서 적게 주면 서운하시단다. 참 사람사는 게 이런건가보다. 남을 아끼고 챙겨줄줄 아는 세상. 근처 텃밭에서 가꾸어서 조금씩 푸진거리를 가져오시는건지 시장에서 받아오시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훈훈한 하루였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아닐듯하고 직접 가꾼 텃밭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사람사는 세상과 내가 살아 움직인다는 기쁨을 맛보는 둘레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