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807.
백련사의 역사
백련사의 원래 이름은 만덕사로 신라 문성왕때 무염국사(801-888)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211년에 원묘국사 요세스님(1163-1245)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로 불리우게 되었다. 이렇게 태동된 백련결사는 최초의 민간 결사운동이었다. 원묘국사의 백련결사는 120년간 고려 8분의 국사(원묘, 정명, 원환, 진정, 원조, 원혜, 진감, 목암국사)를 배출하고 번창하였다.
고려사기를 보면 공민왕자가 1351년에 백련사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왜구가 노략질을 일삼을때 폐허가 되었다. 이후 1430년(세종12년)에 행호대사가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동원 20동과 서원 4동을 건립하고 왜구의 침입에 맞서 행호토성을 쌓는다.
효령대군은 백련사에 입산하여 8년간 큰 법회를 열고 불법승 삼보에 기원하는 수륙재를 지내며 수행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백련사는 청허 휴정선사의 의발을 전수받은 8명의 종사(소요, 해운, 취여, 화악, 설봉, 송파, 정암, 연파대사)를 배출하며 이어져 내려왔다. 백련사에 8국사와 12종사가 나온다고 하였는데 8국사는 고려때 나왔고 8종사는 조선시대때 배출되었으니 앞으로도 4종사가 나올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151호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康津 白蓮寺 동백나무 숲)
동백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백련사의 동백림은 강진에 있는 백련사 부근에 있는데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굴참나무,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도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동백나무의 높이는 평균 7m쯤 되고,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매우 아름다워 이 지역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동백림의 유래에 관하여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인 다산 초당이 가까이 있고, 이곳에서 다도(茶道)연구를 했던 것으로 미루어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백련사의 동백림은 우리나라의 난온대지방을 대표하는 나무인 동백나무가 집단적으로 자라고 있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정약용 선생과 관련된 문화적 장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대웅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1760년(영조36) 2월에 큰 화재가 있어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고 1762년4월13일에 현재의 대웅보전을 중건했다. 묘법연화경에 보면 영축산에서 부처님께서 설법하실때 하늘에서는 만다라, 만수사 꽃비가 내리고 하늘의 노래를 좋아하는 긴나라와 하늘의 음악을 담당하는 건달바, 부처님의 제자인 아라한들과 하늘신, 보살, 사부대중들이 이전에 없었던 일에 기뻐하며 한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기뻐했다고 한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벽화는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그려졌다. 또한 두마리의 영수(靈獸), 봉황과 사자가 해학적으로 조각되어 있고 사람의 다리를 하고 있는 가룽빈가와 도끼를 물고 있는 용,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등이 유독 아름답다. 조선사람들은 대웅보전을 반야용선이라 했다. 대웅보전에서 아미타불을 염하면 이 반야용선을 타고 저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간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대웅보전의 그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은 이상향을 향한 옛 선조들의 지극한 신앙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대웅보전 안에서는 마침 49재가 열리고 있어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눈 아래로는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명당터에 백련사는 자리잡고 있었다.
전형적인 한여름 낮의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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