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806.
해남 두륜산 대흥사.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頭崙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한 도량이다.
이후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종통이 이어지는 곳(宗統所歸之處)으로 한국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도량으로 변모하였다.
즉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 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넓은 산간분지에 위치한 대흥사는 크게 남원과 북원그리고 별원의(표충사,대광명전,박물관) 3구역으로 나뉘어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사명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지금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표충사(表忠祀)는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표하는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매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이곳에서 서산대제 및 나라사랑을 위한 각종 행사에 참여해 오고 있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 탑산사 동종(보물 제8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응진전 삼층석탑(보물 제320호),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1347호), 서산대사 유물(보물 제1357호), 천불전(보물 제1807호), 천불상(전남유형문화재 제52호), 용화당(전남유형문화재 제93호), 대광명전(전남유형문화재 제94호), 관음보살도(전남유형문화재 제179호), 표충사(전남기념물 제19호) 등의 지정문화재와 대흥사 도량 전체가 사적명승 제9호로 지정되어 대흥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는 다양한 창건연기가 전하고 있다.
이들 창건연기는 역사적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사찰의 전통과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대흥사에도 몇 가지 창건 연기가 전하고있다.
대흥사의 창건연기를 전하고 있는 자료로는『죽미기(竹迷記)』,『만일암고기(挽日菴古記)』,『북암기(北菴記)』등이 있으며, 1823년(순조23) 간행된『대둔사지(大芚寺志)』는 이들 자료를 종합한 내용과 함께 이때까지의 사찰역사를 총정리해놓은 중요 자료이다.
[창건설]
426년(백제 구이신왕7)의 신라 정관존자(淨觀尊者) 창건설이다. 신라의 정관 스님이 426년 대흥사 산내 암자의 하나인 만일암을 창건, 이후 508년(무녕왕8)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선행(善行) 비구가 중건하였다고하나 안타깝게도 이 자료에서 창건주로 소개한 정관존자는 생애나 활동 내용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죽미기』는544년(신라 진흥왕5) 아도화상(阿度和尙)의창건설을 전하며, 자장(慈藏)스님과 도선(道詵)스님이 계속해서 중건하였다는 기록도 함께 실려 있다. 현재 사찰 내에서는 대체로 아도화상의 창건설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써는 대흥사의 정확한 창건 시점을 밝히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 응진전(應眞殿)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의 제작 연대가 통일신라 말기 경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대흥사는 늦어도 통일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된 고찰로 보아야 한다. 또한 정관존자나 아도화상 같은 분들이 창건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은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흥사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중시되어야 할 내용이다.
절의 독특한 공간 구성
넓은 산간분지에 자리잡은 대흥사는 좀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다. 절을 가로 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당우들을 배치하였는데, 다른 절에서 보이는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당우들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독특한 공간구성이 특 징이다.
『대둔사지』에서는 이 같은 절의 공간 구성을 크게 북원(北院)과 남원(南院) 의 2구역으로 구분하였다.
현재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청운당, 대향각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그리고 종무소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또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다.
또 남원의 오른편에는 서산대사의 사우인 표충사와 그 부속건물인 비각, 조사전, 의중당, 강례제, 명의제, 그리고 최근에 증 개축한
성보박물관이 있으며, 표충사 뒤편에는 대광명전과 보련각, 그리고 요사채로 이루어진 대광명전이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대둔사의 가람 배치는 크게 남원과 북원으로 나눌 수 있으며, 남원의 구역에 위치한 표충사와 대광명전 일원을 다시 세분하면 북원과 남원, 그리고 표충사, 대광명 전의 네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 표충사와 대광명전 일원은 후대에 조성된 별원(別院)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 로 보아, 대둔사의 옛 모습은 침계루 앞 계곡을 중심으로 남원, 북원 일대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원구역]침계루를 지나 북원 안마당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대웅보전, 그 좌우에 명부전과 범종각,응진전이 나란히 있다.
응진전 앞 3층석탑은 이 절의 유물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물 320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남원구역] 법당으로 천불전과 동국선원이나 용화당 등 강원과 승방 몇채가 각각 돌담으로 구획되어 있다. 천불전의 지붕과 건물의 맵시가 매우 경쾌하며 정면3칸 분합문전체가 아름다운 꽃창살이다. 내부에는 경주에서 실어온 옥돌 불상 천개가 빽빽 하다.
[표 충 사]절에서는 흔하지 않은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 스님의 화상을 봉안하고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 친필선시, 신발, 선조가 내린 교지 등 유물과 정조가 내린 금병풍 등이 보관돼 있다.
[대광명전구역] 표충사 뒤편으로 300미터쯤 들어간 곳에 호젓하게 자리한 대광명전은 현재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8칸짜리 일자집인 보현각, 요사채도 있다. 이밖에 경내 당우들에 걸려 있는 현판글씨들은 당대 명필들이 쓴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 목을 보여준다. 표충사는 정조대왕,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이광사, 백설당 지붕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해탈문.
부도밭.
대광명전과 동국선원. 수심당.
천불전.
봉향각.
가허루. 안으로 들면 천불전이다.
대흥사의 연리근.
침계루.
침계루를 들어서면 대웅보전.
대웅보전 우로 무량수각.
응진당과 산신각.
청운당.
대향각.
윤장대.
명부전.
침계루와 대웅보전 마당.
백설당(무량수각과 한 건물)의 아궁이.
범종각.
대흥사 입구에 있는 유선장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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