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인생/백팔사찰순례하기

34. 미륵사지 (충주 미륵리)

돗가비 2013. 7. 13. 22:42

130713.

경북 문경시쪽에는 관음리가 있고, 충북 중원군 상모면에는 미륵리(彌勒里)라는 마을이 있고, 그곳에 미륵사(彌勒寺)라는 폐허가 된 사찰 터가 있다. 예전에 미륵사가 있었던 바로 이곳에 10여m에 이르는 거대한 미륵불상이 서 있다.

이 미륵불상이 언제 조상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석불의 모양 등으로 볼 때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미륵석불 외에도 비바람에 닳고 닳은 석탑과, 탑의 몸체는 없어진 채 거북 모양의 귀부만 남아 있는 탑 등이 옛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 해주고 있다.

한편 이 미륵사 옆으로는 하늘재를 넘나드는 길이 있다. 하늘재는 신라 아달라왕 때인 156년에 뚫린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로서 조선시대에 문경새재가 놓이기 전에는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울로 올라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즉 고려시대까지는 가장 큰 길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그 길목에 있던 미륵사는 당시 크게 번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미륵사가 이후 어떻게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지금은 석실과 함께 미륵불상만이 고즈넉이 서 있다. 그런데 이끼가 앉아 있는 몸체 부분과는 달리, 얼굴 부위만은 이끼가 끼지 않고 하얗게 되어 있어 신비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미륵불상은 우리나라 미륵불상 중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누이인 덕주공주와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덕주공주는 월악산 덕주사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였고, 태자는 이곳에 북쪽을 향하여 미륵불을 조성하여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설처럼 실제 두 불상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미륵리 미륵불.

석등.

석등.

오층석탑.

흔적만 남은 법당 터.

거북의 등에는 굉장히 큰 비석이 서 있었을것이다.

멀리서 보이는 미륵불.

용도가 무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