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23. 맑음 칠선계곡 내려가기탐방.
칠선계곡은 다른 계곡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우선 가장 길다. 그도 그럴 것이 계곡의 시작이 지리산의 천왕봉에 닿아 있다. 천왕봉에서 북쪽으로 중봉, 하봉을 거쳐 북서쪽으로 촛대봉을 일으켜 세우는 능선과 서쪽으로 제석봉을 비롯한 주능이 끼고 도는 골짜기가 칠선계곡이다. 길이는 추성동까지 10여 키로, 임천강과 만나는 휴천면 의탄까지는 16키로미터에 이른다. 올라가는 경우 평균 9시간은 잡아야 한다. 마폭포에서 주능까지의 마지막 구간인 2키로 정도는 코가 닿을 정도의 급경사 길이다. 셀수없이 많은 폭포와 갈라지는 수백의 작은 계곡이 모여서 칠선계곡은 만들어진다.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준비를 한다. 누룽지탕을 먹을 계산이었으나 어제 산 햇반이 두 개나 남아버려서 그냥 무게를 줄이기 위해 햇반을 뎁혀 먹었다. 등산을 하는 날은 꼭 아침을 챙겨 먹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 산은 먹은 만큼 걷는다고 하지 않는가?
04:15 새벽산행 시작. 대피소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올때마다 한밤중이다. 한 시간여를 힘들여서 올라서니 개선문에 도착한다. 개선문에 도착하기 전에 부자지간에 온 두 사람과 마산에서 혼자 왔다는 아주머니 이렇게 다섯명이 일행이 되어 올라간다. 다들 칠선계곡이 일정이라서 금새 친해진다. 간식도 나눠먹고 사진도 찍어주면서 올라가다 보니 힘든줄은 모르겠다. 그리고 산행속도가 조금 빠른듯하여 속도조절에 나선다. 너무 일찍 올라가서 추위에 떠는것보다는 이렇게 서서히 올라가는게 낫다. 어차피 어둠때문에 산 아래를 쳐다봐야 보이는것도 없고 그냥 가다가 쉬다가를 반복한다. 오르다 남자 세 명이서 가는데 그분들도 칠선계곡이 오늘에 코스이다. 오늘 대피소에서 자고 천왕봉을 오르는 많은 사람들은 거의 칠선계곡으로 내려설것이다. 그렇게 다시 오르다보면 천왕봉의 턱밑에 도착하게 된다. 천왕봉 턱밑에는 샘이라고 하기엔 낯간지러운 샘이 있다. 이름하여 천왕샘이다. 이름은 거창하고 좋은데 샘은 아니다. 바위틈에서 물이 약간 나와 고이는 정도이다. 그래도 이름이 천왕샘이니 멋지다. 이 물이 천왕봉을 오르면서 갈증을 풀어주기도 한다. 천왕샘이 좋은것 하나는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바람을 막아준다는것이다. 천왕봉을 오를때마다 항상 시간이 이르면 이곳에서 머물다 오른다. 앉아서 너무나 밝고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는 금성을 쳐다본다. 샛별이 얼마나 크고 밝게 보이는지 보름달보다 더 밝은것 같다. 샛별이 어찌 저리 고운지 모르겠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 하늘에서 샛별이 저리 빛났을까? 샛별은 금성이라고도 하며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새벽 동쪽 하늘에서 보일 때는 서성, 명성, 신성, 계명성이라고 불렸다. 저녁 서쪽 하늘에 보일 때는 태백성, 개밥바라기로 불렸다. 배불리 먹을 수 없었던 옛날, 저녁 하늘에서 이 별을 보고서야 배고픈 개가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기다린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이름 유래는 새벽하늘 빛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샛별에서 머리쪽으로 더 고개를 쳐들어보라 그럼 화성이 보일것이다. 요즘세상엔 별을 보면서 자라는 애들이 별로 없어서 별자리도 책으로만 공부를 할것이다. 그래서 금성이나 화성이나 하늘에서 찾아내는게 쉽지않을듯하다. 고개를 바짝 들고 보면 붉게 타고 있는 빨간색의 화성이 보인다( 화성이 유난히 더 크게 보이거나 붉게 보이면 전쟁이 난다고 점성술에서는 말한다). 2003년에 화성이 6 만년만에 가장 근접하게 지구에 가까이 왔다고 하는데 그때 지구에 무슨 변고가 있었는지 궁금해지네...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기다린다. 여기는 여느때와 같이 사진을 찍겠다고 아우성들이다. 사진이 뭐가 그리 중요한지 죽기살기로 덤벼들어야 겨우 사진 한 장 남길수 있다. 얼마전에 여기서 사진 찍겠다고 덤비다 뒤로 밀리면서 떨어져 사망사고 났다고 들었는데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답게 금방 잊어버린다.
천왕봉 비석.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 오늘도 일출보기는 글렀다. 날씨가 좋아 멋진 일출을 기대했는데 날이 너무 맑아서 가스인지 구름인지가 떠있어 해를 가려버렸다. 실망을 안고 집합장소로 이동하였다.
천왕봉에 일출
계곡입구에 모여 신분증과 보험가입여부를 확인하고 기념사진도 한 장 박고 나서 내려가기 시작한다. 계곡으로 내려서는 순간부터 숲은 우거져 있다. 구상나무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 바위투성이 천왕봉 정상과는 다른 맛이 난다. 그렇게 급경사를 마구 내려가기 시작한다. 기대했던것만큼은 볼거리는 없다. 그냥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것에 만족해야 한다. 내려서는 길에는 칠선계곡을 대표한다는 주목 한 그루가 늠름하게 폼새를 자랑하고 서 있다. 정말 당당하고 우람하다.
칠선계곡을 내려서기 시작하면서 서 있는 구상나무 군락지
주목. 우리나라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수령 500년이 넘은 주목이란다
한 시간여를 힘들여서 내려서면 물소리가 들리면서 폭포가 휴식터를 만들어준다. 마폭이다. 폭포 두 개가 마주보고 서 있어서 마주보는 폭포 그래서 마폭이라고 한단다. 마폭에 도착해서는 그냥 지나칠수가 없다. 이런 폭포아래서 발을 쉬어주지 않으면 주인 잘못만난 발이 주인을 버릴것이기 때문이다. 마폭아래에서 가져간 떡으로 아침겸 간식을 먹고 땀을 훔친 후 다시 걸음을 옮긴다. 마폭을 지나서 대륙폭포를 가는 길은 좁으며 밀림지대를 지나는 기분이다. 집채만한 바위가 물에 쓸려 내려오다 막혀 있는 계곡의 자연미도 쳐다보면 볼만하다. 단조로운듯하면서 색다른 볼거리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계곡을 다시 한 시간여 걸었을까? 그렇게 걷다보면 삼층폭포에 이른다. 물이 휘휘 돌아 떨어지는 삼단으로 된 폭포이다. 수량이 적어 지금은 별로 보는 맛이 덜하겠지만 수량이 풍부하다면 정말 엄청난 장관을 만들어낼것이다.
마폭을 지나면서 올려다보면 이렇고
마폭을 내려다보면 이렇다.
바위든 나무든 그대로 내팽져있는 계곡은 한없이 이어진다
커다란 나무에 뒤엉켜 있는 작은 나무 줄기와 뿌리
작은 물줄기.... 앉아서 오줌이라도 싸고 있는듯하고...
칠선계곡 한 가운데서 버티고 서 있는 나무. 물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고 어찌 저렇게 수 십년을 버틸까?
삼층폭포는 물이 오랜 세월을 흐르면서 바위를 깍아 물길을 만들어서 흘러내린다. 물이 휘휘 돌아서 내려가는데 보기 좋다. 삼층폭포를 가로 질러 내려서는 바위는 물이 많거나 젖었을때는 미끄러울듯한데 조심스럽게 건너야 할 대목이다. 칠선계곡 산행에서 가장 주의가 요하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폭포가 상당히 길다는것을 알 수 있다. 칠선계곡은 걸어가는 내내 폭포에서 물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름도 없을 수많은 폭포가 숲속에 숨어 있다. 등산로에서 떨어져 있어 전부 볼 수는 없지만 이보다 멋진 폭포도 많을것이다. 삼층폭포아래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강행군이다.
삼층폭포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렇다
삼층폭포
삼층폭포 하단
삼층폭포
삼층폭포를 지나 한참을 더 내려오다 길에서 살짝 벗어난곳에 대륙폭포가 있다. 배낭은 그냥 둔채로 50여미터를 걸어가서 대륙폭포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름이 왜 대륙폭포일까 궁금해진다. 이곳에서도 휴식을 취하고 발을 푼 후 다시 걷는다. 여기서부터 길은 조금 수월해진다. 아마 이곳까진 사람들이 더 많이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출입금지구역이라고 하지만 다닐 사람들은 다 모르게 다니고 있다. 대륙폭포를 올라서 국골이라는곳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걸로 알고 있다. 아무리 말린다고 사람들이 모두 말을 듣겠는가. 법이란게 지킬 사람은 지켜도 어길 사람은 아무리 말려도 어기게 되어 있다. 하지 말란건 더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아니겠는가?
대륙폭포
대륙폭포
칠선계곡의 이름을 만들어 낸 칠선폭포에 다다른다. 폭포는 작고 아담하다. 정말 선녀들이 저기 내려와 놀았을까? 일곱 선녀가 내려와 놀때 구경하지 못한게 한이다 ㅎㅎㅎ. 폭포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앙증맞고 아담해도 웅장한 맛은 없다. 그리 구경을 하면서 온종일 계곡과 폭포를 구경하면서 다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름도 다 모를 소와 담을 지나면서 폭포를 지나면서 그렇게 계곡 산행은 이어진다.
칠선폭포
칠선폭포
비선담과 출렁다리
비선담 출입통제소
단풍과 소와 담이 어우러진 칠선계곡의 가을풍경
단풍물들은 작은 소
선녀탕 이정표. 선녀탕 올라가면 옥녀탕도 있다
칠선계곡은 길고 길다. 그런 계곡을 한없이 한없이 내려왔다. 가을정취에 취하고 단풍에 취하고 내 흥에 취해서 그렇게 내려왔다. 이름모를 폭포와 소와 담과 그리고 계곡물소리를 벗삼아서 그렇게 내려섰다. 그렇게 가을냄새에 취해 내려오다 불상사가 눈앞에서 닥치는 일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두지터 다 내려와서 화전민터가 있다. 거기에서 남자 둘이 임자없는 감을 따고 있어 구경하면서 내려서다 땅에 떨어져서 감잎에 덮혀 있던 조각난 감에 미끄러져서 그냥 냅다 내동댕이 쳐졌다. 고목처럼 앞으로 쓰러지는데 대책이 서지 않았다. 얼떨결에 벌어지는 일이라서 반사적인 행동으로 손을 짚어 막았지만 얼굴이 땅에 부딪힐 정도의 속도로 넘어졌다. 넘어졌다 정신없이 일어서서 보니 얼굴이 부딪힌 그곳에는 튀어나온 돌멩이가 있어 얼마나 놀래키는지 모른다. 조팀장은 갈비뼈가 나갔을지도 몰라 안절부절이고 난 나대로 몸 상태를 확인해보니 그나마 크게 다친곳은 없어보인다. 손바닥과 손등에 찰과상을 입은 정도이다. 그보단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컸다. 어어찌 조각난 감이 있어 하필이면 그걸 밣아 넘어진단 말인가. 그래도 다행스럽게 큰 부상은 없어 하산하는덴 지장이 없다. 천우신조가 있었나보다.
구비구비 내려오다 보니 두지터라는 동네에 들어선다. 민가 몇 채가 있고 막걸리를 파는 집도 있다. 물론 여기도 근처 산에서 채취한 약초 등을 팔기도 한다. 요즘은 어느 산에 가던 진입로에는 약초나 막걸리를 판다. 두지터도 개발이 한창이어서 팬션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 동네는 차가 들어오지를 못하는 오지이다. 바이크 한 대가 왔다갔다 하면서 자재를 실어 나른다. 가게에 앉아 도토리묵에 동동주를 시켜 마시는데 도토리묵도 맛있고 술도 꿀맛이다. 직접 담근 술이 너무 맛있다. 힘든 산행의 피로를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술 맛이다. 내려오는 길에 두지터에 팬션을 짓는 사장님과 약초차를 만드는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추성마을에 내려선 후 버스정류소앞 가게에서 다시 막걸리를 한 병 시켜 마신다. 칠선계곡을 같이 내려왔던 여자 두 명과 그곳에서 다시 만나 택시를 불러 타고 마천에 도착하여 서울 오는 시외버스(14:30)에 몸을 실었다.
두지동 민가
추성마을 다와서의 칠선계곡
두지동 마을앞의 칠선계곡
차도 다니지 않고 걸어들어가야 하는 두지동
추성마을에서 두지동으로 들어가는 길
수도 없이 매달려 있는 감나무와 산중턱의 절 그리고 추성마을
누군가를 위해 남겨져 있는 감나무의 까치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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