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옥당골로 찾아들어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

돗가비 2009. 8. 21. 13:01

- 호      : 소태산(少太山)
- 출생지 : 영촌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는 1891년 5월 5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한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우주자연현상과 생로병사의 이치에 대해 큰 의심을 품고 20여 년에 걸친 구도 고행 끝에 1916년 4월 28일, 26세의 나이로 큰 깨달음(大覺)을 이루었다.

 

깨달음의 기쁨을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고 하고 후천개벽의 새 문명사회를 이끌어갈 원불교의 문을 열었다. 이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를 개교표어로 내세우고 2차 세계대전과 일제하의 암울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최초 9인 제자들과 함께 생활 불교, 대중 불교를 표방하며 불법의 생활화, 시대화, 대중화에 힘쓰며 미래사회에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게송을 발표한 후 1943년 6월 1일 세수 53세로 열반에 들었다. 소태산 대종사의 성은 박(朴)씨이며 이름은 중빈(重彬), 호는 소태산(少太山)이다. 탄생-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는 1891년 5월 5일 이곳 옥녀봉 아래 영촌에서 탄생(탄생가)

 

발심- 7세부터 하늘의 이치를 비롯 인간생활에 의심이 걸려 구도를 시작 (옥녀봉)
기도- 11세부터 의심을 해결하고자 산신령을 만나려는 뜻에 기도(삼밭재)
스승을 찾아서 - 16세부터 6년간 스승 찾아 사방을 다님(구호동집터)
입정-22세부터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라는 한생각에 입정(선진나루)
대각-1910년 4월 28일, 대종사 26세에 모든 의심 다 깨우치는 대각 이룸(대각터,만곡일월비)
교화시작-소태산 대종사는 당시 세상을 보고[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 선포,[최초 법어]를 제자들에게 가르침(최초설법지)
교화단 조직 - 따르는 40여명중 9인을 창립 표준제자로 선정 최초의 단 조직
저축조합운동- 1917년 저축조합을 조직하여 금주단연,근검절약,공동노동,보은미 저축,허례페지를 실천,공부와 사업의 기초 만듦
방언공사 - 1918년부터 1년간 바다 개펄 막아 논을 만드는 방언공사 이름(방언관리소터,정관평,제명바위)
법인기도-창생 위해 목숨을 희생하겠다는 9인 제자의 간절한 기도로 법계에 인증받는 법인성사를 이룸(구간도실터,9인봉)
영산원 건설-1918년 옥녀봉밑 구간도실, 1923년 돛드레미로 옮겨 영산원이라 이름하고 교단 창립기의 많은 선진들이 대종사 모시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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