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관 : 진주
- 호 : 수은
- 별 칭 : 자 태초
- 활동분야 : 정치
- 출 생 지 : 전남 영광
- 주요저서 :「수은집」,「간양록」,「운제록」,「건거록」,「강감회요」등
본관 진주, 자 태초(太初), 호 수은(睡隱).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유봉마을에서 태어났다.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159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교서관박사 ·전적을 거쳐 1596년 공조 ·형조 좌랑을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분호조판서(分戶曹判書) 이광정(李光庭)의 종사관으로 남원(南原)에서 군량보급에 힘쓰다가, 남원이 함락된 뒤 고향 영광으로 돌아가 김상준(金尙寯)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싸웠다. 전세가 불리하자 통제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려고, 남행(南行) 도중에 왜적의 포로가 되었다. 일본 오사카[大阪]로 끌려가 학식 높은 승려들과 교유하며 유학을 가르쳐 주는 한편, 그곳의 지리와 군사시설을 비롯한 적정(敵情)을 비밀리에 인편으로 고국에 보고하였으니 그글을 모아 엮은 책이 간양록이다
1598년 교토[京都]에 이송되어 그곳에서도 적정을 적어 밀송(密送)하고, 1600년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가족들과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 1602년 대구교수(大丘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얼마 후 사임하였고, 1608년 순천교수(順天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경사백가(經史百家)에 통달하고, 포로로 일본에 있을 때 후지와라 세이가[藤原惺窩: 1561~1619)에게 성리학을 전함으로써 일본 성리학의 원조(元祖)가 되었으며, 많은 명유를 배출시켜 일본역사에 찬란히 빛나고 있으며, 억류지였던 일본 대주시에는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다.
그림에도 뛰어나 인물화와 송화(松畵)에 특기가 있었다. 영광 용계사(龍溪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수은집(睡隱集)》《간양록(看羊錄)》《운제록(雲堤錄)》《건거록(巾車錄)》《강감회요(綱鑑會要)》《좌씨정화(左氏精華)》《문선찬주(文選纂註)》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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