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인생/만고강산유람하기

정유년여름의 통영1

돗가비 2017. 9. 6. 21:19

20170826. 맑음. 온 가족이 통영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다.

어젯밤에 여수에서 근무하는 큰 아들의 아파트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아침에 통영으로 이동을 하였다. 아들이 사는 아파트는 관사인데 그 직장에서는 아파트 몇 호를 비워 두고 가족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물론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낯설은 팬션이나 호텔보다는 아늑하고 편한 밤을 보낼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아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통영에 들어서 가장 먼저 한 게 동파랑을 찾는 일이다. 마누라가 동파랑은 제일로 치고 통영을 선택했기에 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난 동파랑이 꽤 큰 마을인줄 알았다. 그러나 아주 작은 언덕길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조금은 실망을 하면서 걸었다. 전국에 벽화마을이 많고 큰 곳이 여럿이라서 그랬나. 약간은 소문난 잔치에 먹잟것없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실망스러울 정도는 아닌 그냥 그곳을 즐기기엔 충분하리라.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을협동조합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커피전문점, 매점, 먹을거리를 파는 곳 등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 운영되고 수익금을 분배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도 그래서 커피도 간식도 그곳에서 사먹었다. 뭐 거창한 공정여행은 아닐지라도 조금은 지역민에게 수익이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서...주민들에게 아름다운 곳을 간직하고 있는 마음에 감사하면서 조금은 보답을 해야 겠다는 작은 마음에서...

동파랑길 초입에 있는 벽화.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무슨 드라마촬영지라고 하던데...영화나 드라마에 별 관심이 없는 화상이라서 제목은 지나치면서 잊었다는 것.

동피랑벽화에서.

동피랑은 통영을 대표하는 여행지중에 한 곳이다. 골목은 깨끗하며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통영항은 고요하면서도 삶의 활력이 넘치는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삼도수군통제영 입구의 벅수.

통제영은 1593년(선조 16)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직제를 새로 만들어 전라좌수사에게 이를 겸임하게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삼도수군통제영’으로 통칭되며, 약칭은 ‘통영’이다.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정유재란으로 한산 진영이 폐허가 되자, 통제영은 전세에 따라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고, 전란이 끝난 뒤에도 거제도 오아포(烏兒浦), 고성현 춘원포(春元浦) 등지로 옮겨 다니며 제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1603년(선조 36)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통제영을 두룡포(頭龍浦: 현 통영시 문화동)로 정한 이후, 이곳에다 터를 닦고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1605년(선조 38) 음력 7월 14일에는 여황산 남쪽 기슭에 객사인 세병관(洗兵館),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후 1678년(숙종 4) 제57대 통제사 윤천뢰(尹天賚)가 영문 주위의 산 능선을 따라 높이 1장 반(약 4.6m), 둘레 1만 1730자(약 3.6㎞), 성가퀴 707개 규모의 평산성(平山城)을 쌓았다. 그리하여 19세기 중엽의 통영성에는 4대문(大門)과 2암문(暗門) 그리고 3포루(鋪樓)가 있었고, 세병관을 위시하여 100여 개의 관아가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강점된 뒤 세병관을 제외한 대·소 관아 100여 동의 건물들이 모두 헐렸고, 그 자리에 학교, 법원, 검찰, 세무서 등이 들어섰다.

1975년 이후에 세병관 및 주변 지역을 정비하고, 1996년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유구를 확인하였다. 통제영 건물 중 현존하는 것은 보물 제293호로 지정된 세병관 뿐이며, 1987년에 복원된 수항루(受降樓) 1동이 있다. 수항루를 지나 우측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2호인 두룡포 기사비(頭龍浦 記事碑)와 비각 건물이, 좌측에는 매표소 및 관리사 건물이 있다.

통제사 내아인 운주당(運籌堂), 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건물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 선자방) 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있다 복원을 위해 옮긴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의 통제영은 예전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엄청난 예산과 경험을 바탕으로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겉모습으로는 대부분이 그대로 복원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망일루. 통금을 알리는 종이 매달려 있던 곳으로 세병관으로 들어가는 정문.

통제사들의 송덕비들이 발견되는대로 보관하고 있다.


세병관 마당에 있는데...

통제사비군. 통제사들의 송덕비 기타 이런저런 碑들이 서 있다.

세병관. 통제영의 중심건물로 객사로 사용되었단다.

병고. 무기창고

운주당. 통제사의 주 집무공간이다.

운주당 내부. 통제사가 평시에 저런 모습으로 공무를 처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운주당 내부.

득한당. 통제사가 휴식을 취하던 곳.

득한당과 읍취헌.

읍취헌. 통제사가 휴식을 취하면서 풍경을 조망하던 곳.

의두헌. 운주당 뒷편의 정자.

육의정. 운주당 뒷편의 정자.

운주당 뒷편에서 본 통영항.

통제영에 들어서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병관을 거쳐 뒤돌아 내려가버리더라. 하지만 옆에 있는 운주당과 내아를 꼭 들러 위쪽에 있는 이곳에 올라서면 통영항을 아주 멋스럽게 볼 수가 있다. 통영 여행에서 이곳 정자에 올라 내려다 본 순간이 가장 행복했고 좋았다는 평가를 내려 본다.

통제사의 작은 집무실.

내아. 통제사가 거처하던 곳.

백화당. 비장의 숙소 및 일상업무를 보던 공간.


공내헌. 12공방을 관장하던 공감의 집무실.

12공방의 일부.

잉번청. 아전의 色吏(곡물의 관리를 맡아보던 구실아치)들이 수직하던 곳

통제영에서

산성청. 통영성을 방비하던 산성 중군의 관아.

결승당. 중영의 숙소겸 일상업무를 보는 공간.

응수헌. 중영의 영빈관.

중영청. 우후(통제사의 참모장)의 집무공간.

통제영은 입장료를 받음. 그러나 확인하고 그런 절차는 없음. 그러나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였음. 사람이 개구멍으로 들락거릴수는 없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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