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16. 흐림.
오대산 월정사.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동쪽 계곡의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잡고 있다.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자연 조건이며 풍광이 빼어날뿐더러 예로부터 오만 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성지로서 신성시 되어 왔다.
그 오대산의중심 사찰로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1400여 년 동안,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려니와, 월정사는 오늘날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이 곳 전나무 숲의 그 곧음과 푸름으로 승가僧伽의 얼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니 그 때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이었다.
자장율사는 636년에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 문수사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자장율사는 “너희 나라 동북방에는 일만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문수로부터 듣고 신라에 돌아오자 마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오대산에 들어가 임시로 초가를 짓고 머물면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정진하였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태백 정암사에 들어가 입적하게 된다. 비록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뜻은 끝내 이루지 못했으나 이로부터 월정사는 오대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게 되었다.
그 뒤로 유동보살 -석가모니가 전생에 보살로서 수행할 때 연등불(燃燈佛)에게 공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당시의 이름 - 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신효거사와 또 범일국사의 제자였던 두타승 신의 스님이 자장율사가 초가를 지었던 터에 다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이후로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던 이 암자는 수다사(水多寺) - 진부면 수항리에 있던 절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 의 장로 유연스님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면서 비로소 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고 그 뒤로 차츰 규모가 커졌다. 그 무렵의 월정사는 금당 뒤쪽이 바로 산인 특수한 산지가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금당 앞에 탑이 있고 그 옆에 강당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남북자오선(南北子午線) 위에 일직선으로 중문, 탑 ,금당, 강당 등을 세운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가람 배치와는 다르다.
고려 충렬왕 33년(1377)에 화재로 모두 타버린 것을 이일스님이 중창하고 조선시대까지 계속 법등을 밝혀 왔는데 조선 순조 33년(1833)에 또다시 큰 화재를 입고 말았다. 그런 지 12년 뒤인 헌종 10년(1844)에 이르러 영담, 정암 스님 같은 분이 앞장서서 중건하여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였다. 1911년에는 전국 31본산의 가운데 하나가 되어 강원도 남부의 사찰을 총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던 월정사는 1950년 6. 25 전쟁의 참화로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하여 영산전, 광응전, 진영각 등 17동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도 모두 재가 되어버린 비운을 맞이했다.
월정사의 전각.
천왕문.
금강교를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 천왕문이다.
일명 사천왕문四天王門이라고도 하며 대개 일주문 다음에 천왕문(天王門)이 있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수미산 중턱에 살고 있는 불법을 외호外護하는 신장神將을 모신 전각이다. 이 천왕들은 수미산 중턱의 동, 서, 남, 북에서 그들 무리와 살면서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며 불법을 수호한다.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왼손에 비파를 들었고,
남방 증장천왕僧長天王은 오른손에 보검을 들었고,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오른손에 용을 왼손에 여의주를 들었고,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월정사의 천왕문은 조선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천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벽화에는 중국선종의 제2대조인 혜가, 부모은중경, 자장율사, 지장보살, 포대선인, 기인 한산의 설화가 그림으로 설명되어있다. 1974년 만화스님이 중건했다.
금강루.
월정사의 금강루는 사천왕문을 지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 월정사는 불이문의 자리에 금강문을 두고 있다. 금강문의 오른쪽에는 움금강역사상이라고도 하는 나라연금강이, 왼쪽에는 훔금강역사상이라고도 불리우는 밀적금강이 있으며 특히 밀적금강역사는 지혜의 무기인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이는 일체만물의 생성에서부터 소멸까지를 표현한 것으로 금강역사의 강한 힘과 지혜로 불법을 호지護持하고 사찰을 수호하며 불교의 진리를 표현하고있다. 전면 3칸, 측면 2칸, 2층 누각으로 1997년 12월 현해스님이 착공하여 1999년 10월에 낙성했다.
용금루.
용금루(湧金樓)는 본래 팔각구층석탑 가까이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누각의 기초를 화강석 기둥으로 하였고 밑으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누마루형식의 건축으로 용금루의 계단을 한단한단 오르면 월정사경내가 마치 불계佛界와도 같이 조금씩 가까워오는 구조로 월정사의 장엄함을 경험하게 하는 구조라고 하겠다.
적광전(寂光殿)
팔각구층석탑 뒤에 만월산 자락의 한 기운이 엉긴 곳에 자리한 적광전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법당으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갖가지 문양이 어우러진 단청은 매우 화려하다.
1930년대의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과거 7불을 보신 칠불보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아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68년에 만화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다시 중건되었다.
적광전 외부 기둥 18개 중 16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이며, 내부기둥 10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전나무로 만들었다. 적광전이 소실되기 전에는 칠불보전七佛寶殿이라 했다.
대체로 적광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인데 이곳 적광전은 그 통례를 깨고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그대로 따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이는 1964년 만화스님 법당 중창당시에는 현판이 대웅전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탄허스님의 오대산수도원을 기념하기 위해 결사의 주主 경전이었던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으로 고쳐 현판을 달았다.
적광전 뒷면 벽화는 10개의 소를 찾아 다니는 이야기를 그린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적광전 현판과 주련柱聯 글씨는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주련의 넉 줄은 자장율사의 불탑게이다.
만대윤왕삼계주
萬代輪王三界主
쌍림시멸기천추
雙林示滅幾千秋
진신사리금유재
眞身舍利今猶在
보사군생예불휴
普使群生禮不休
만대의 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여
사라쌍수 열반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지금 여기에 모셨으니
뭇 중생으로 하여금 예배를 쉬게 하지 않으리.
진영각.
진영각은 개창주開創主나 중창주重創主와 같은 고승의 진영을 모시는 전각이다.
월정사의 진영각은 개산조각을 따로 두어 개창주를 따로 모시고 있어 근 · 현대의 스님들만을 모시고 있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형태인 월정사 진영각은 근대 월정사에 주석한 조계종 초대 종정이신 한암스님, 현대불교학의 아버지이신 탄허스님,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지암스님, 6.25의 전란후 월정사를 중건하신 만화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1975년 만화스님이 중건하고 1994년에 현해스님이 2009년 퇴우 정념스님이 증축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각 층의 옥개석은 간략하게 마무리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살짝 들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추녀는 수평이며 처마 면에 낙수홈이 음각되었고, 상륜부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다. 노반, 복발, 앙화, 보륜은 석제이나 나머지는 금동제로서 보개, 수연, 보주 등이 완전하다.
그 동안 몇 번의 화재로 각 부재에 손상을 입었으나 그 형태는 원형을 갖추고 있다. 6·25전쟁 때 사찰 건물이 불에 타는 바람에 이 석탑도 피해를 입어 1970년 10월 전면 해체보수가 되었는데, 당시 제5층 옥개석에서 은제도금의 여래입상 1구(높이 9.7cm)가 발견되었고, 제1층 옥개석에서는 구리거울, 경문, 향나무 등의 각종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적광전 뒤로 나란히 개산조각, 삼성각. 지장전.
진영각.
개산조각(開山祖閣).
적광전 寂光殿 뒤에 자리잡은 개산조각은 규모가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월정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진영眞影을 모신 곳이다. 자장율사의 진영은 1804년에 제작된 통도사에 모셔져 있는 자장율사의 진영이 가장 오래 되었으나 월정사의 자장율사 진영은 최근에 제작한 것이다. 1958년 영해당 경덕 스님이 중건했으니 현존하는 월정사 당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삼성각.
삼성각은 독성 나반존자, 산신님, 칠성님을 함께 모신 곳이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달은 성자로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을 신격화한 것으로 신앙되고 있다. 칠성님은 본디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신앙의 신으로 불두칠성의 별자리를 신격화한 것으로 한국에 들어와 토착화 되었다.
처음에는 약사藥師신앙과 결합되었다가 조선 중기 이후 수명신의 본디 모습이 강조되어 병자나 자식낳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산에 호랑이가 많았으며 산을 주재하는 산악신이 있다고 믿었다. 산신님의 다른 모습은 호랑이라고 믿었으며 주로 호랑이와 같이 표현된다. 이는 모두 불교가 들어오면서 호법신장護法神將의 하나로 흡수된 것으로 불교의 포용력과 흡수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상단에 칠성탱화와 칠성조각을 모시고, 향우측向右側으로 산신탱화와 산신조각, 향좌측向左側으로 독성탱화와 조각을 봉안하고 있다. 1994년 현해스님 때 중건했다.
수광전(壽光殿) /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수광전, 극락전 이라고도 불리운다.
아阿란(아미타(바)Amitabha 무량광無量光·무량수無量壽) 한량없다無의 뜻이며 미타는 수명을 뜻하니 목숨이 없는 수명의 다함이 없는 부처님이란 뜻이다. 월정사 무량수전은 상단에는 아미타부처님과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에 모시고 뒤쪽으로 극락의 법회 장면을 묘사한 목각탱화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를 모시고 있다.
중단에는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지장시왕地藏十王 목각탱화를 봉안하고 있으며, 하단에는 지옥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님을 금선묘金線描의 탱화로 봉안하고 있다. 지금 무량수전은 1989년 도명스님 때 시작해 1992년 현해스님이 완공廻向했다.
금강루 누각에 있는 윤장대.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전나무숲길.
전나무숲길은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1키로에 이른다.
2006년에 쓰러졌다는 600년 된 전나무. 사람과 비교해보면 그 크기를 어림짐작 할 수가 있겠다.
월정사로 가는 전나무숲.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숲길에 있는 성황각.
월정사 들어가는 길의 전나무숲길. 단풍과 어우러져 멋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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