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예비고사를 본 후 졸업을 앞두고 동창생 친구 세 명과 함께 처음으로 지리산을 밣아봤다. 화엄사를 지나 산속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었다. 겁없이 지리산속에 초겨울에 몸을 담갔으니 얼마나 추웠겠는가. 어찌 구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군인들이 입는 야상이라는게 외투로 입었던 기억이 나고 그냥 집에서 입던 일상복을 입었길래 밤새 추위에 떨었다. 저녁까지는 그럭저럭 해먹고 일찍 찾아오는 밤을 텐트속에서 지새는데 얼마나 춥고 밤이 길던지 모르겠다. 악몽같은 하룻밤이었던게 기억에 남는다. 새벽이 오자마자 아침을 챙겨먹으러는데 밖엔 눈이 내려 고생길이 훤했다. 어렵사리 아침을 챙겨 먹고 서둘러서 화엄사계곡을 따라 노고단으로 오르는데 길은 어찌나 미끄럽던지... 지금이야 등산객들도 많고 등산로도 잘 다듬어져 있어 혼자 산에 다니더라도 무섭거나 길을 잃어 버릴 염려가 적지만 그날은 아무리 걸어도 사람 구경을 한것같지가 않다.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야 하고 눈에 덮힌 길도 희미해서 찾아가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미끄러워 넘어지면서도 오르기는 해야겠기에 그리고 아직 철없이 어린 나이이기에 노고단에 오르면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는것도 생각치 않고 무작정올랐다. 힘든 길이었다면 그냥 화엄사로 하산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땐 왜 그랬는지 지금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도 젊은 혈기가 너무 왕성했지 않았나싶다. 암튼 어렵사리 노고단에 올라서니 그 당시에는 무슨 별장인지 군부대였는지가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관리가 되지 않는 상태로 보였는데 용도는 정확히 모르겠다. 지리산을 간다고 갔지만 미리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거나 지리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간게 아니었기에 모르고 지나쳤는데 지금에 와서는 궁금하기도 하다. 노고단에 올라서니 눈발이 거세지고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어대는지 정말 아찔하다. 시간이 지체되면 정말 얼어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 흉물스러운 건물에서 서성거리다 더 이상 천왕봉으로 가는걸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노고단까지는 지금은 길을 잘 닦아놓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마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하산하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트럭 한 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기억으로는 무슨 공사장의 트럭으로 기억이 난다. 트럭형태나 타고 있던 사람들의 옷차림으로는 군인은 아니고 공사장 인부들인듯했다. 군부대가 노고단에 있었다면 군용트럭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는지 차를 세워서 우릴 태워준다. 아마 태워가지 않으면 무슨 불상사라도 당하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을거다. 차를 타고 오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길 낭떠러기가 계속 이어지는 길이었다. 트럭 짐칸에 앉아 있으려니 얼마나 추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무 고맙다. 아찔한 길 아래를 쳐다보면서 동태가 되어 꽁꽁 얼어버렸다. 차를 얻어 타고 천은사인지 하는데까지 내려왔나싶다. 산행은 항상 준비를 단단히 하고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른체 지리산을 올랐다 혼이 난 하루 였다. 30년이 넘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는 추억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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