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신변잡기 주워담아

가난 속에 피운 꽃

돗가비 2009. 9. 22. 19:53

연암이 어쩌다 돈을 버는 법을 배웠는데, 밀랍을 녹여 가짜 매화를 만

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번 연암이 이덕무에게 편지를 보냈

다.

꽃병에 열 한 송이 꽃을 꽂아 동전 스무 닢을 얻어서 형수님께 열 닢을

드렸고, 아내에게 세 닢, 자은 딸에게 한 닢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형님

방에 땔 나무 값으로 두 닢, 내 방에도 두 닢, 담배를 사느라 한 닢을 쓰

고 나니, 공교롭게도 한 닢이 남아서 이에 올려 보내니 웃고 받아 주시

오.

연암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이덕무의 답장은 다음과 같다.

내가 마침 구멍 난 창을 바르려 했는데, 종이만 있고 풀이 없어서 바르

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릉선생이 내게 돈 한 닢을 나누어 주는 바람

에 풀을 사서 바르고 일을 끝마쳤습니다. 올해 귀에 이명耳鳴이 나지

않고 손이 부르트지 않은 것은 무릉선생의 덕분입니다.

유달리 가난했던 연암인지라 그의 글을 보면 돈을 빌려달라는 글이 많

이 있다. 초정 박제가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을 보자.

망령되이 누추한 골목에서 무슨 일로 즐거웠겠느냐고 묻던 일에 견주

어 보네 .이 무릎을 굽히지 않은지 오래 되고 보니, 어떤 좋은 벼슬도

나만은 못할 것일세. 내 급히 절하네.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여기 또

호리병을 보내니 가득 담아 보내줌이 어떨까?

호리병에 돈을 가득 담아 보내라는 이 편지를 받은 박제가의 답신은

또 어떤가.

열흘 장맛비에 찾아가는 벗이 못됨을 부끄러워합니다. 공방孔方 2백을

편지를 가져가는 하인에게 보냅니다. 호리병속의 일은 없습니다. 세상

에 양주楊洲의 학은 없는 법이지요

달라는 것과 주는 것 어느 것이 싫겠습니까? 그야 달라는 것이 싫지요.

 주는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진실로 달라는 사람이 남이 주지 않는

것을 싫어하듯 하여. 이제 내가 구하지 않았는데도 넉넉하게 내려주심

을 입게 되니 그대가 주는 것을 즐거워함을 믿겠구려.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불편한 것이다. 그 불편한 가난을 주눅 들

지 않고 풍자와 해학으로 헤쳐나간 연암을 비롯한 옛 사람들이 그립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