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는 것은 다만 글자를 다루는 작은 재주뿐
중종 때 사람인 임형수林亨秀의 자는 사수士遂, 호는 금호錦湖로 본관은 평택이다. 을사년에 을사년에 제주목사가 되었다가 뒤에 삭직당하고 정미년에 사사되었는데, 윤원형 형제를 비판한 때문이었다.
공은 사람됨이 뜻이 높고 기개가 한 세상을 덮을만하였으며, 또한 문무의 재능을 지녔었다. 일찍이 이황과 함께 호당에 들어갔는데, 술이 취하면 곧 호탕하게 노래를 부르며 시를 지었다. 이황의 자字를 부르면서 “자네는 사나이의 장쾌한 취미를 아는가. 나는 아네?” 하자 이황이 웃으며 “한 번 말해 보게” 하였더니 임형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일 때, 검은 돈피 갓옷을 입고 흰 깃이 달린 기다란 화살을 허리에 차고, 팔뚝에는 백 근 짜리 센 활을 걸고 철총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골짜기로 들어가면, 긴 바람이 골짜기에서 일어나고 초목이 진동하는데, 느닷없이 큰 산돼지가 놀라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곧 활을 힘껏 잡아 당기어 쏘아 죽여 말에서 내려 칼을 빼서 이놈을 잡고, 고목을 베어 불을 피우고, 기다란 꼬챙이에다 그 고기를 꿰어서 구우면 기름과 피가 끓으면서 뚝뚝 떨어지는데, 걸상에 걸터앉아 저며서 먹으며 큰 은 대접에 술을 가득 부어 마시고 얼근하게 취할 때에 하늘을 쳐다보면 골짜기l의 구름이 눈이 되어 취한 얼굴 위를 비단처럼 펄펄 스치게 된다. 이런 맛을 자네가 아는가, 자네가 잘 하는 것은 다만 글자를 다루는 작은 재주뿐이야.“
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이황은 공公의 인품을 말할 때면, 언제나 그가 하던 말을 이렇게 외웠었다. <축수편>
나주에서 사약을 먹기 전에 임형수는 열 살도 안 된 아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글은 배우지 말라.” 그 말이 걸렸던지 아들을 다시 불러 “만일 글을 배우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이 될 터이니, 글은 배우되 과거는 보지마라.”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도사가 와서 빨리 마시기를 재촉하자, 공은 조용히 말하기를, ‘새벽종이 울고 시간이 다 되었으니,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말이 바로 이 순간의 광경이로구나.” 하고, 빙긋이 웃으면서 나가서 죽음을 받았다. 권벌權橃이 공이 적소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술을 가져와라 하여 잔뜩 두어 사발을 마시고 “이 사람도 죽었구나.” 하며 목이 잠기도록 울었다.
주량酒量에 한정이 없었던 임형수가 사약을 내렸을 때에 독주를 열여섯 잔을 마셨는데도 까딱도 하지 않았다. 다시 두 사발을 마셨는데도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자 마침내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한다.
그가 죽기 전에 독주를 받아 놓고 크게 웃으며, “이 술은 잔을 주고받는 일이 없다.” 하자 종 한사람이 울면서 안주를 가져왔다. 임형수는 그 안주를 물리치면서 “향도香徒들이 벌쓸 때에는 안주를 안 쓰는 법인데, 이게 어떤 술이라고” 하고서 쭉 마셔버렸다고 한다.
옛 사람들의 신산했던 生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탁 트이면서 먹먹할 때가 많고 또 한편에서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낄 수가 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떤가? 좁쌀만한 권세와 재부 때문에 명분도 의리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 같아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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