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신변잡기 주워담아

독수리오형제증후군

돗가비 2009. 9. 22. 19:43

사는 게 재미없는 이들은 세상이 뒤집어지길 원한다. 2002년 월드컵처

럼 온 국민이 나와 빨간 옷 입고 세상이 뒤집어져야만 재미있다고 느

낀다. '엄청난 재미'에 대한 환상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찌 자주 뒤집어지는가?

 

세상이 뒤집어져야만 재미잇는데 세상이 그리 쉽게 뒤집어지질 않는

다. 그러니 결국 우리의 독수리오형제는 폭탄주를 마시고 자기 위장을

뒤집어버린다. 세상이 뒤집어지질 않으니, 자기 스스로 뒤집어지는 것

이다.

 

우리의 '독수리오형제'는 뉴스도 열심히 본다.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

 

오면 8시 뉴스부터 보기 시작한다. 8시 뉴스가 끝나면 바로 9시 뉴스, 9

시 뉴스가 끝나면 잠시 기다렸다가 11시 뉴스, 그 사이를 견디기 어려

운 이들은 아내와 아이들의 엄청난 저항을 무릅쓰고 YTN으로 잠시 채

널을 돌린다. 11시 뉴스가 끝나면 다시 마감 뉴스.

 

도대체 왜 이렇게들 열심히 뉴스를 보는 것일까?

 

세상이 뒤집어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저 밋밋한 뉴스만 나오면 재미

없다. 그러나 한번 따져보자. 우리나라가 잘 돌아가는 나라라면 밋밋

한 뉴스만 나와야 한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뉴스가 자주 생기는 건 후

진국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우리는 갑자기 세상이 뒤집어

지는 엄청난 뉴스가 나오길 끊임없없이 기다리며 리모컨을 만지작거

린다. 우리가 후진국이어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뉴스가 나오는 것이 아

니라, 세상이 뒤집어지는 뉴스를 기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후진국이라

는 이야기다.

 

참, 여담이지만 아직까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정말 중요한 비밀이 있

다.

 

아는가?

 

독수리오형제가 형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섯 명 중 한명이 여자다.

그러니까 형제가 아니라 남매다.

 

더 중요한 비밀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정원에서도 모른다. 이 다

섯 중 독수리는 단 한 놈뿐이다. 맨 앞의 한 녀석만 독수리고, 나머지는

콘도르, 백조, 제비, 부어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독수리오형제가

전부 독수리인 줄 알고 있다. 이 녀석들은 사실'조류오남매'에 불과하

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독수리오형제라고 사기 치고 다닌다.

 

이 땅의 사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독수리오형제'인 줄 알고 지

구를 지키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술 깨면 '조류오남매'에 불과한 것

을 깨닫게 된다. 슬픈 이야기다.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는 이 땅의 사내들에게는 내 이야

기가 없다. 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삶이 재미없다는 이야기다.

 

### 최근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수 많은 책을 읽다가 오랫만에 글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내용중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