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23. 맑음. 혼자서 수도승의 마음으로 길을 걷다.
하동호에서 덕산소재지까지 거리 20.03km. 휴식시간포함 5시간 47분(11:32부터~17:19). 평균속도 시간당 3.47km.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시인 이원규-
다시 걸어보는 지리산둘레길이다. 요즘 인사철과 맞물려 심사가 뒤틀려 있는 때에 혼자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하는 마음에 먼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하동에서 청학동가는 버스를 타고 하동호에서 내린다. 묵언수행을 하는 셈이다. 혼자서 걷는 길을 지루함과 따분함 그리고 홀가분함이 함께 한다.
하동호 둑방길을 건너 나본마을에 도착한다. 나본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큰 물을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라는데 우연인지 딱 들어 맞는다. 하동호를 내려다보면서 마을은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마을까지 왕복2차선 도로가 새로 만들어져 있고 하동호둑까지 이어지면 관광단지로 새롭게 태어날거라는 주민의 기대감이 상당하다. 마을에서 양이터재로 오르는 길을 더운 날에 오르기 힘들거라고 걱정해주는 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경사길을 오른다. 한켠에서 큰 물소리가 나기에 계곡도 없고 산도 높지 않은데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의아해했다. 가뭄에 물 품는 소리인가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물소리에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라는걸 알게 되었다. 양이터재 거의 오르기 직전까지 계곡은 이어지는데 이런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게 이상하다. 주변이 흙산이라서 그런걸게다. 대나무숲이 이어지는데 참 좋다. 신선하다. 물과 바람과 대나무숲이 어우러져 깊은 시름을 잊게 해줄만하다. 오르막길에 힘은 들어도 그럴수록 기분은 좋아진다. 힘들게 오르면 양이터재이다. 낙남정맥이 지나는 고갯길이다.
하동호. 백년만의 가뭄이라고 야단이고 밭작물이 타들어간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는 시절이다. 농민들의 가슴이 타 들어가는 심정. 하동호의 수위도 많이 낮아졌다.
양이터재를 오르는 길에 대나무숲길. 이곳이 아니면 걸어볼 수 없는 길이다. 담양의 죽림원인가가 멋있다고 하는데 사람의 손에 잘 다듬어진 곳보다는 이처럼 자연에 어울려 만들어진 대나무숲이 멋지기만 하다. 거기에 바로 옆에는 계곡물이 콸콸 넘쳐 흐르고 물소리가 시원함을 더해준다.
양이터재. 낙남정맥이 가로질러 가는 고갯길이다.
깊은산속농원. 산나물체험농장이다.
양이터재를 내려서면서부터 하루종일 이어지는 콘크리트길이지만 지루하지만은 않다. 길옆 숲이 우거지고 야생화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길가에 산딸기도 따 먹으면서 걷다 쉬다하며 걷다보면 청상과부들을 잠 못자게 한다는 밤꽃냄새가 코를 찌른다. 밤꽃냄새는 정액냄새와 같다고 한다. 그러니 정액냄새를 맡은 과부들이 이 냄새를 맡고 잠을 설치지 않겠는가?
양이터마을의 유래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혹은 동학농민전쟁 때 양씨와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피신하여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 따내지 못한 매실도 지천이고 여기저기에 예쁘게 지은 집들이 널려 있다. 다리는 힘들어도 눈은 즐겁다. 궁항마을(마을지형이 활처럼 생겼다하여 활미기 또는 궁항)에 들어서고 오율마을을 지나고 유점마을을 지나고 중태마을에 도착한다. 중태안내센터를 지나면서는 덕천강을 따라 걷는다. 덕산소재지를 건너다보면서 다리를 건널까 물을 건널까하다 옷을 걷어올리고 강을 건넌다. 발도 담그고 시원하니 좋다. 힘들게 나를 도와 준 다리도 목욕하니 호강이다. 하루를 이렇게 마감한다.
지나다보면 이런 멋진 집들이 수없이 많다는거.
딸기모종. 딸기모를 저렇게 모판에 키워 비닐하우스에 심는다는걸 오늘 처음 알았다. 작업하는걸 지켜보니 아주 섬세함이 필요하더라.
백궁선원. 외부인출입금지라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봐야 천대받을거니까.
지네재. 지네가 많아서 지네재인가? 지네를 닮아서 지네재인가?
위태마을에서 유점마을로 지나는 고갯길. 갈치재.
유점마을 지나 당산나무 아래 쇼파. 저 곳에 나무벤치를 만들어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앉아 쉰곳에는 평상이 아주 잘 놓여 있었다.
갈치재를 내려와 유점마을을 지나면서 당산나무 그늘이 나그네를 쉬어 가게 만든다. 정말 시원하더라.
중태농원. 토종닭 식당에서 풀어 놓은 닭.
덕산소재지와 지리산. 희미한 가스속으로 지리산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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