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완)

지리산 둘레길 7 9구례 금평마을에서 화개 쌍계사까지)

돗가비 2012. 4. 15. 08:44

120414. 맑음. 혼자서. 

 

문척면 금평마을 - 2.7km 화정리 오봉정사 - 3.5km 구례군 간전교- 2.5km 토지면 석주관 칠의사묘-2km 피아골 주유소(왼쪽 임도)- 3.5km 목아재- 2.8km 외곡리 신촌마을- 2km 내서리 남산마을-  2km 내동리 당치마을- 1km 농평마을 당재-2.5km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목통마을- 3km 신흥삼거리- 화개면 모암마을- 화개 쌍계사. 

 

탁 좆


오해하지 마시라

탁좆은 탁족(濯足)의 오자가 아니다

한여름 계곡물에 발만 담그면 탁족이지만

새벽마다 불끈 일출 조짐을 보이는 불의 알까지

푸덩덩 찬물에 말면 탁좆이다


오늘도 피아골로 숨어들어

거풍에 탁좆을 하다

마당바위 찜질방에 드러누워

햇볕 사우나로 젖은 몸 말리는데

어허라, 열두어 걸음 위의 계곡

긴 머리 산중 처녀도 훌러덩

탁좆, 아니 탁십(濯十)을 하는 게 아닌가


몽정기의 소년처럼

후다닥 옷가지를 걸치고

연이어 너덧 개비 담배를 피울 때까지

스물 댓 살의 산중 처녀 여여하니

꼭 무슨 죄인처럼

쪼그려 앉아 기다리고 기다릴 뿐


이윽고 젖은 머리카락

산바람 스치는 처자에게

이보씨요, 아가씨! 등산로에서

훤히 보이는 데서 꼭 그래야 쓰겄소?

농을 던지자마자

차암, 보는 지가 꼴리지 내가 꼴리나!


장풍 일격을 날리며 청설모처럼

통통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게 아닌가

멍하니 불의 알이 오그라지도록

아직 젊은 흑발 대선사를 보긴 보았던 것이다                        

- 시 이원규-

 

이원규(李元圭) 약력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옛 애인의 집><돌아보면 그가 있다><빨치산 편지> 등과 산문집 <지리산 편지><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등을 펴냈다. 신동엽창작상,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순천대 문창과, 지리산학교, 실상사 작은학교 강사

 

연속 3주째 지리산둘레길이다. 오늘 걸은 구간은 공식적으로 둘레길로 인정받지는 않은 길이다. 지리산시인 이원규님의 미리 가본 지리산둘레길을 가는 것이다. 이 구간은 지역여론이나 사유재산 그리고 지리산국립공원을 거쳐야 하는 여러가지 문제로 지지부진하게 둘레길이 개통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작년에 마눌과 같이 구례읍내에서 오산을 거쳐 문척마을까지 걸었던 길을 이어가기로 하고 택시로 문척마을을 조금 더 지나 금평마을에 내린다. 오산에서 하산하면서 내려선 길이 명확치 않은데 금평마을에서 기준점을 삼아 시작하고자 택시(5000원)를 타고 금평마을 앞 다리에서 내린다. 그곳부터는 861번 아스팔트포장길을 걷는다. 이 길은 벚꽃터널이 한없이 이어지는 길로 봄철엔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드라이브코스로 제격인 곳이다. 오늘도 사람과 차량들의 통행이 빈번하다. 이곳 섬진강유역은 수달생태보존을 위해 낚시까지도 금지하고 있는 구역이기도 하다.

벚꽃을 실컷 구경하면서 오봉산을 지나 걷자니 사진을 찍던 젊은이가 나를 태워준단다. 도보여행을 온 나로서는 영내키지 않는 제안이다. 벚꽃은 쌍계사벚꽃이 제일이라며 거기까지 태워준다는 고마운 말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아니고 위험한 도로를 조금 벗어나는 구간까지 차를 태워달라고 하고 차로 몇 분 동안 이동한다. 간전마을에 도착하더니 자긴 공사장에 인부들 확인을 하고 가야하니 같이 갔다가 하동으로 가잔다. 난 걷던 길 가기로 하고 차에서 내려 간전교로 간다. 간전교 남단에 섬진강어류생태관이 있는데 사람들은 별로 없는듯하다. 다리를 건너는데도 인도가 없어 위험하다. 발 아래로는 섬진강의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른다. 이제부터 위험한 19번 국도를 한참을 걸어야 한다. 간전교에서 피아골주유소까지 4.5KM구간은 위험천만한 길이다. 속도를 내고 달리는 길에는 인도가 없고 갓길도 좁아서 대형사고로 이어질수도 있는 길이라서 둘레길 걷기로는 부적합한곳이다. 861번 국도를 따라 화개 남도대교까지 마냥 걸으면 조금은 위험이 줄어들겠지만 그리되면 섬진강만 따라 걷는 단조로운 길이되어 둘레길 만드는 곳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다만 섬진강가를 걸으면서 보는 경치는 볼만하다.

섬진강에는 레프팅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이고 드문드문 있는 휴게소에는 가족 나들이객들이 있다. 난 용궁가든이던가 하는 식당에 들러 재첩국(7000원)을 시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걷는다. 수족관엔 참게가 있어 물어보니 양식이란다. 어쩐지 저리 참게가 많을수가 없는데. 도중에 석주관칠의사묘를 들러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치고 만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피아골주유소를 지나치자마자 오르막 임도가 보이기에 올라간다. 오르면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면 뿌연 가운데서도 멀리까지 벚꽃이 늘어진게 아주 멋지다. 내려다보는 경치가 그만이다. 목아재로 올라서는 길이다.

목아재는 옛날에 피아골에서 구례로 나오던 고갯길이다. 목아재를 오르는 중에 집이 한채 있고 주변은 차나무와 밤나무 그리고 두릅 등을 재배하는 농가인듯하다. 발발이 4마리가 나와 시끄럽게 떠들어도 사람은 나와보지도 않는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은 시원스럽다. 임도를 걷는 길은 콘크리트포장길로 다리가 팍팍하다. 간간이 벚꽃과 매화를 감상할수도 있다. 두릅이 새싹을 터트리는게 따가고 싶은 맘을 먹게 한다. 길가에 아주 많이 두릅이 널려 있는데 지켜보는 사람도 없고 따가도 모를듯하지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곳 주인이 이 길을 내주는 이유가 사람을 믿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이 길은 둘레길로는 불가능하겠다. 사유재산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많을테니까. 도로가에 두릅을 하나 뜯어 먹어보니 향이 그만이다. 오르막길을 가다쉬다 반복하면서 십여리길을 걸으니 힘이 든다. 목아재에 올라서면 바로 내리막이다. 신촌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마을로 형성되지 않은듯하게 군데군데 민박과 농가가 서 있다. 시작한 금평마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포장도로만을 걷는다. 오늘은 그렇다.

신촌마을의 매화와 피아골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구경하고 남산마을로 들어선다. 남산마을에도 팬션을 짓고  하천을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지리산둘레길 시골마을 어디를 가나 공사판이다. 한적한 산길을 걷자고 와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남산마을에 들어서면 연곡분교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계곡과 산이 어울린 곳에 있으면서 벚꽃이 담장을 쳐 아주 아름답다. 다리를 건너 길을 걸으면 연곡사와 당치마을로 가는 길목에 다다른다. 여기서 잠시 망설인다. 연곡사 구경을 하고 오늘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할것인가? 길을 더 걸어 하동으로 들어설것인가? 연곡사의 기와지붕이 어렴풋하게 보이는데 마침 젊은이 하나가 당치마을로 오른다. 등산스틱을 하나 들고 가는게 여행객인가싶어 나도 뒤를 따른다. 가파른 포장길이 여기도 숨이 콱콱 막힌다. 정말 걷기 싫어진다. 계곡을 끼고 다랑이 논들이 늘어 서 있고 당치마을에 집들도 드문드문하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서인지 여름철에만 하는건지 민박들도 어지럽게 뒹구는 살림도구들로 난장판이다. 당치마을을 지나 길을 걸어가며 아까 젊은이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힘든 길을 오른다.  그 젊은 사람의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게 빠르다. 금새 앞동서더니 굽이길에서 사라진다. 지금은 깔끔하게 새로 지은 집이 한 채 보이고 아까 그 젊은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선다. 농평마을이다. 그렇다 여행온 사람이 아니고 그곳 주민이었나보다. 정말 그 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살면 좋겠다. 주변엔 약초와 여러가지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생활하나보다. 이곳까지가 포장길이라면 이제부턴 산길이다. 농평마을 농가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다 부서진 움막이 보이고 이곳이 당재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구분하는 고갯길이다. 당재 한켠에는 기와장이 보이고 기와장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보이는게 이곳에 당산재를 지낼 집을 지을려고 했나본데 무슨 사연인지 못하고 다 떠난듯한 인상이다. 당재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위해 아담한 산신각이라도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 당재에선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삼도봉을 오르는 불무장등길로 이어지는데 지금은 불무장등으로 가는 길은 반달곰보호구역으로 폐쇄되었다. 농평마을 집앞을 지나면서 당재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는데 아마도 황장산에서 올라온 등산객이었나본데 이 사람들은 목통마을에서 조우하게 된다. 당재에서 목통마을까지 내려서는 길은 그야말로 인적없는 오솔길이다. 한 사람이 겨우 걸을만한 길로 잘 보면 화전민터였을것 같은 곳도 보인다. 전남과 전북을 경계짓던 숙성치의 무서우리만큼의 섬뜩하면서 호젓한 오솔길, 솔향과 오르내림을 즐길수 있는 구룡치 길과 맞먹는 좋은 둘레길이겠다. 특히나 작은 계곡물소리를 들을수 있어 좋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목통마을에 다다른다. 정말 산골마을같은 곳이다. 목통마을에 내려서면 다시 아스팔트길이다. 목통마을에 도착하니 당재에서 들렸던 목소리의 젊은 등산객 몇이서 버스를 기다린다. 나에게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그냥 걷는 사람이라 모른다하고  길을 계속간다. 신흥삼거리까지 걷는 길에는 간간이 보이는 주택과 전통찻집들이 보인다. 신흥삼거리에 도착한다. 걸었던 칠불사로 가는 길과 의신마을로 가는 길 그리고 화재장터로 가는 길의 삼거리이다. 이곳은 최치원이 삼신동이라 칭하고 살았던 화개동천이다.

신흥삼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화개장터로 나가야 한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 반은 기다려야 차가 들어오겠다. 어차피 가는 길목이니 걸어가다 차가 오면 타기로 하고 걷는데 한참을 걸었다. 다음 구간엔 이 길도 둘레길로는 불편한 차도라서 약간은 생략하고 시작해야 하겠기에 이번차에 걸어본다. 양옆 가로수로 벚꽃이 터널을 만들어주니 이번 기회가 아니면 걷기 쉽지 않은 길이다. 길에는 사람과 차로 북적이고 짜증은 나지만 쉬지 않고 걷는다. 모암마을을 지나도 차는 신흥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쌍계사입구에 도착하니 택시(일만원. 축제기간이라 무조건 일만원이다. 평상시는 약간 적게 나올듯)가 오기에 그걸 타고 화개면소재지까지 이동하였다.

오늘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포장도로를 걷는 힘든 하루였다. 걸은 총 거리는 구례 간전면 금평마을에서 하동 신흥삼거리까지가 27.5km이고 다시 쌍계사까지 거리를 합하면 30km가 훨씬 넘겠다. 오봉정사 지나 조금 차를 얻어탄거 말고는 걸었으니 굉장히 많이 걸은 하루다. 금평마을에서 일분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10시에 시작하여 화개버스정류장에 5시 도착했다. 구례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이 막혀 차가 늦어진다. 일박이일에 나왔다는 식당에 가서 된장찌개(육천원)를 시켜먹는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불편한 점이 혼자서 식당에 가면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택시기사와 대화하면서 들은 말인데 둘레길 구간이 악양 대축까지 공개되었는데 지금은 화개를 지나 구례구간까지 만들어져 있단다. 아직 표지판 등은 설치하지 않았지만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이 아니고 화개장터 부근을 지나 황장산 자락을 넘는 구간이라고 하나보다. 내가 걸었던 길보다는 길은 훨씬 수월하겠다. 다음 구간에도 나는 성제봉을 넘을건데 아마 관청에서 만드는 둘레길은 섬진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길로 만들려나보다. 사람이 걷던 동물이 걷던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지는 법.

화개면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는 없고 해서 구례로 이동하여 다시 전주로 간다. 벚꽃축제 기간에 주말에 상경버스가 있을리 만무하다. 전주에 도착하니 서울가는 막차(21:15)가 있어 표를 구하고 근처 식당에 가서 전주콩나물국밥(오천원)을 먹는다. 특별한 맛은 없다. 서울에 오니 자정이 다 되었다. 재미난 하루였다. 정말 빨리 그리고 많이도 걸었다.

 

 

 

금평마을에서 간전교 가는 861번 국도의 벚꽃 길. 이런 길이 남도대교까지 이어진단다.

 

벚꽃 터널이 쭈욱 이어진다.

간전교 남단에 있는 섬진강어류생태관.

19번 국도 전망좋은곳에서 섬진강을 굽어다보면서. 구례 문척교에서 시작한 벚꽃은 화개까지 이어져 간다.

섬진강과 벚꽃.

석주관칠의사 사당.

 칠의사묘는 정유재란 때 전라도의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 출신 의사(義士) 7명의 무덤이다. 석주관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1597년 왜군들이 호남지방을 목표로 이곳을 집중공격하자 왕득인이 의병을 일으켜 적에게 대항했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 후 왕득인의 아들과 각 지역에서 모여든 의병·승병들이 힘을 합쳐 처절한 혈전을 전개했으나 대부분의 의병이 희생된 비운의 장소다.

 

피아골주유소 현대오일을 지나 콘크리트포장 임도로 오르면서. 섬진강은 남해바다로 흘러내린다.

목아재오르는 길에서. 비탈 언덕에 색다르게 지어진 집.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 피아골 내서천가에 자리잡고 있는 분교로 너무너무 아릅답다. 학교자체가 한 폭의 그림.

피아골 가는 길과 당치마을로 가는 길목에서.

당치마을.

당재. 삼도봉으로 가는 길은 반달곰보호로 폐쇄되었다.

당재에 있는 움막. 용도는 모르겠다.

목통마을. 산골마을마다에는 이젠 농사 지을 젊은이들은 없고 민박이다 펜션이다 하는 집들만 들어서고 있다.

 

신흥삼거리 목장승.

 최치원 선생이 화개동천을 삼신동(三神洞)이라 칭하고 세이암과 푸조나무라는 세 가지 흔적을 남겼다. 옛 신흥사 절터이자 왕성초등학교 아래 높이 25m, 둘레 6.25m의 노거수가 한 그루 있다. 이 나무가 바로 푸조나무다.

최치원 선생이 입산할 때 꽂은 지팡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 있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나도 죽을 것”이라 말했다고 전한다. 이는 함양의 상림에도 똑같은 얘기가 전해오니 그저 최치원과 수령의 시차가 600년은 족히 넘는 전설일 뿐이고, 그보다는 바로 앞 화개천 건너의 너럭바위에 써 놓은 ‘세이암(洗耳岩)’이라는 희미한 글씨가 뒷골을 서늘하게 한다.

당시 최치원 선생은 통일신라 말기의 타락한 권력과 비루한 세상사를 등지고 입산하면서 저잣거리에서 들었던 더러운 말들을 버리기 위해 귀를 씻었다고 한다.

1023번 지방도와 화개천변의 벚꽃. 이렇게 화개까지 쭈욱 이어진다.

벚꽃은 빌딩숲에 있는 도심의 벚꽃도 보기 좋을지모르지만 역시 이렇게 산과 강물과 함께 어우러져야 멋을 낸다.

새단장을 하고 나서 구례시외버스정류장은 깔끔한 신사같다. 구례시외버스정류장의 군내버스시간표.

구례시외버스시간표. 서울오는 버스표가 없을 경우에는 전주로 가서 서울행 버스를 타는 방법. 버스가 남원을 거치나 남원은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이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하다. 좀 멀더라도 편한 맛을 원한다면 광주로 가도 되겠다. 기차를 원한다면 구례구역으로 가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