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완)

지리산 둘레길 6 (마천 추성마을에서 동강마을까지)

돗가비 2012. 4. 8. 00:44

120407. 혼자서 외로움과 지루함을 달래면서.

저번 주말에는 부부가 둘레길을 걸었으나 별로 갈 마음이 내키지 않는지 따라나서지를 않아 혼자서 표를 예약하고 마천으로 갔다. 마천에 도착하여 추성마을로 가는 버스를 보니 시간이 20여분밖에 없어 점심을 먹을수가 없다. 버스(1050원)를 타고 추성마을 가는 길에 벽송사 입구에서 내려 포장도로의 팍팍한 오르막을 오른다. 둘레길을 준비하는 시작단계인데 힘이 든다. 벽송사 가는 길 주차장에 가게가 하나 있어 못 먹은 점심을 라면으로 떼운다. 라면에 배추김치가 나오지 않고 무슨 김치가 나오는데 알싸한  맛이 난다. 맛있게 라면을 먹고 우선 벽송사로 향한다.

마천정류장의 버스시간표. 칠선계곡을 가는 추성마을이나 지리산을 오르는 길목인 백무동을 가자면 이곳을 거치게 된다.

함양시외버스터미널의 시간표. 상경하는 시간표가 유용할듯하다. 토요일은 널널하나 일요일은 늦으면 버스표 구하기가 쉽지 않을걸로 예상되고 이럴 경우엔 수원이나 대전까지 가서 갈아타면 되겠다.

 

벽송사에서 송대마을로 이어지는 둘레길. 지금은 사유지를 통과하는 문제로 길이 변경되어 엄천강을 따라 걷는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의중마을에서부터 이길을 지나 송대마을까지는 걸어보고 싶다.

 

벽송사 가는 길목에는 목장승이 서 있고 오래된 목장승을 모셔 놓은 전각도 있는데 목장승을 이리 잘 모신 곳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닐까싶다. 이곳에서 산을 돌고 넘어 송대마을로 가는 둘레길인데 둘레길 탐방객들이 사유지에 경작하는 농작물이나 약초가 손을 많이 타는 바람에 막아버려 지금은 의중마을에서 곧장 송전마을로 길이 이어진다. 그래도 4구간을 의중마을에서 송전마을로 그냥 걷기엔 서운함이 있는 구간이다. 해서 벽송사부터 걷기로 한것이다. 벽송사 구경하기도 싶지 않은 일이고. 벽송사에 가면 꼭 절구경을 하기 전에 지금의 절 위에 옛날에 절이 있던 곳을 가봐야 한다. 지금은 미인송은 지지대에 의지하는 신세이지만 빼어난 절세미인의 모습이고 도인송은 늠름하고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덤으로 훤히 트인 공간에서 앞산인 창암산과 저 멀리로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의 주능선을 보는 맛을 갖기도 한다. 가슴이 확 트인다. 멋지다.

절마당에 들어서서 전각들을 기웃거리니 대웅전을 찾느냐고 보살님이 물으신다. 그런다고 하니 여긴 원통전이 대웅전에 부처님을 모신 절이란다. 원통전에 들렀다 나오니 기와불사를 하라고 해서 시주를 하고 몇 마디 얘기를 나눈다. 약초차를 주시는데 맛이 좋다. 이곳에서는 누구라도 와서 숙식을 하고 갈 수 있다고 아무때라도 쉬러 오랜다. 중창불사를 하고 선원을 짓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더 걸릴거란다. 아주 적극적이시다. 머리가 복잡할때 이곳에 와서 쉬었다가면 다 나으리라.

그리고 이제 서암정사로 향한다. 불당을 모두 부처님 조각으로 만들어 놓아 언론에도 많이 나온 절이다. 과거에는 벽송사의 부속암자였는데 지금은 절로 승격하고 오히려 벽송사보다 일반인에게는 더 알려진 절일게다. 벽송사가 오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서암정사는 현대화하면서 꾸며지는 절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밋밋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절이다. 불교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엔 서암정사에는 전각들이 들어설 만한 땅이 부족해서 전각들에 모실 부처님들을 그리 돌조각으로 새기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절에 대해선 사찰암자에서 다시 보기로 하고 길을 떠나자.

벽송사 들어가는 곳에 목장승.

미인송(오른쪽)과 도인송(왼쪽) 과 삼층석탑

미인송에 기도하면 미인이 되고 도인송에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대웅전 위쪽 공터엔 1000년 묵은 소나무가 자라는데 도인송이다. 나이에 걸맞은 굵고 반듯한 줄기에 잎들은 원뿔 모양으로 뭉쳤다. 어느 노승이 주장자를 심었고 그게 소나무로 승화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그는 500년 뒤 다시 돌아오겠다고 공언하고 열반했다. 귀환한 시기는 아마도 1520년 무렵일 것이며 도를 깨친 벽송지엄 선사가 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하는 해다.
45도 각도로 비스듬이 구부러진 미인송(美人松)은 환성지안 선사의 죽음과 사랑이 서린 나무다.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구부러졌다. 마치 미인송이 도인송을 보호하는 형국인데 넘어질 듯 하면서도 도인송이 비를 맞을까 불볕에 탈날까 감싸고 있는 듯하다. 
부용낭자는 남몰래 스님을 연모하던 여자였다. 스승이자 정인의 억울한 죽음을 접한 그녀는 천년학이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유언을 했다. 벽송사에서 스님의 정령을 수호하겠다는 서약이었다. 그렇게 미인송은 이름과 사연을 얻었다. 그래서 일까 미인송에는 항상 학 한마리가 앉아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위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오는 도인송과 미인송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사연을 지니고 있지만 미인송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또다른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 처럼 미인송은 처음부터 비스듬하게 자란 것일까? 아니면 또 어떤 사연으로 그렇게 되었을까?
미인송을 뒤에서 보면 껍질이 벗겨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껍질이 벗겨진 시작점은 미인송이 상처를 입고 꺽인 곳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눈으로 쉽게 확인이 된다. 이 흔적은 바로 기름을 만들기 위해 송진을 뽑아 낸 흔적이다.

삼층석탑에서 내려다 보는 벽송사.

벽송사 목장승.

서암정사에서 의중마을까지는 이런 산길을 걷게 되는데 둘레길에서 멋진 길에 하나이다. 혼자 걷기엔 더 없이 좋다.

 

서암정사를 떠나 걷다보면 보는 시누대길.

추모대가 있는 전망 좋은 곳에서 보는 추성마을과 칠선계곡 입구 두지마을로 가는 고갯길과 저 멀리 눈이 쌓인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의 주봉들이 보인다.

4구간의 서암정사와 의중마을을 걷다보면 추모대가 있는 산허리를 만나게 된다. 작은 글자가 음각되어 있는데 희미하다.

의중마을과 저 멀리로는 삼봉산일게다.

의중마을에 들어 서니 간간이 매화꽃이 보인다. 일주일전에는 꽃이 만개하지 않았더니 이젠 꽃향기가 제법이다. 완연한 봄인가보다. 이 마을도 여느 시골처럼 주인없는 집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일반주택인데 송모재라고 하는 글이 있는 집은 어떤 집이었을까 무지 궁금했다. 의중마을에선 농기계창고가 있는 옆길로 해서 마을을 빠져 나간다. 그곳부터 한참을 산속의 호젓함을 느끼면서 가게 된다. 한켠으로는 엄천강의 물 흘러가는 소리가 우렁차다. 처음엔 나는 그게 자동차소음인줄 알았다. 마천과 함양을 오가는 차들의 굉음으로 듣고 가는데 계속이어지기에 차분히 들어보니 엄천강의 물 흘러가는 소리가 그리 크게 들릴줄이야 어찌 알수 있으리요. 물도 그리 맑을수가 없다. 얼마전에 뉴스에 지리산댐을 막으면 이곳이 수몰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을 끌어다쓰는 부산, 마산 등 외지 사람들이야 필요한 일일지언정 이곳이 고향이고 이곳이 터전인 사람들은 다 객지로 떠나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강이 사라진다니 가슴아플려고 한다. 제발 막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좁은 오솔길을 마냥 걷는다. 벽송사와 서암정사까지 구경하는데 한 시간 지나갔다. 서암정사에서 빠른 걸음으로 쉬지 않고 딱 한 시간 걸으면 용유교가 나온다. 벽송사에서 용유담이 있는 용유교까지 정말 둘레길에 명코스로 손색이 없다. 길도 산길이고 좁은 길이라서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고 소나무숲도 좋다. 추천하고 싶은 길이다. 용유교에 내려서니 다리 아래로는 푸른 물이 흐른다. 이곳이 용유담이다. 용유교옆에는 반야정사라는 작은 절이 있고 건너편에는 굿당인지 사물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 굿을 하고 있나보다. 용유교에서 용유담을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주변 경치가 멋있어서. 용유교에서 바라보는 모전마을도 멋지고.

보기엔 농사를 짓다 상경하고 빈 집인듯한데 송모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거대한 불상을 조각하고 있는 곳.

용유담 가기 전 전망 좋은 묘소에서 보는 엄천강. 앞산이 금대산과 백운산이고 멀리 희미한 산이 삼정산일지 모르겠다.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지리산 용유담 계곡을 ‘명승’으로 지정한다는 문화재청의 예고까지 있었지만 댐건설 예정지라는 이유로 갑자기 보류돼 지리산의 절경이 수몰될 위기를 맞고 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용유담은 용이 살던 못이란 전설을 간직한 ‘용유담‘.지리산의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빚어 전국유명계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주변 바위에는 남명 조식 등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다녀갔다는 기록도 새겨져 있어 문화적가치가 높은 것으로 학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지리산 역사를 연구하는데 굉장히 중요할 뿐 아니라, 주변 자연경관 빼어나 관광지개발은 물론 역사적가치가 매우 훌륭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용유담‘을 국가 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한다고 예고했다.
그런데 지난달 갑자기 명승 지정을 보류돼는 바람에 지역민은 물론 관심을 가진 각계 청에서 의구심을 제시하고 있다.
함양군 마천면 용유담 일대는 한때 수자원공사가 이곳은 홍수 조절용 댐 건설 예정지라며 ‘명승’ 지정에서 빼 달라고 문화재청에 의견서를 보낸 직후로 보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함양군조차 ‘명승’ 지정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함양군 관계자와 지역주민들은 “용유담이 그동안 수차례 태풍 루사나 매미나 등 강한 태풍으로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용유담은 옛날 모습과 다르게 지금 많이 훼손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지리산 댐 건설에 대한 찬반이 팽팽해 댐 건설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댐 건설로 ‘용유담‘의 명승 지정은 보류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용유담.

용유담.

용유담과 모전마을.

용유담과 용유교. 매화가 한창이다.

용유교에 도착하면서부터는 동강마을까지 계속이어지는 포장도로 길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마을 포장길을 걸어야 하루를 마칠수 있다. 그래서 지루하다. 강과 들과 산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지만 숲속만은 못하다. 그리고 포장길은 항상 힘이 든다. 가는 길에 간간이 눈요깃거리가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엄청강은 빠른 물살을 자랑하면 흐른다. 모전마을을 지나 송전마을 산촌생태마을을 지나고 다리가 팍팍해질 무렵에 송문교에 도착한다. 용유교에서 송문교까지도 딱 한 시간이 걸렸다. 송문교에서도 운서마을까지 마을포장도로를 따라 걸으니 걸음이 빨라진다. 구시락재를 넘어서는 길목에 주막이 있는데 조용하다. 들어갈 마음도 없었으니 그냥 지나치고 동강마을로 내려선다. 지난 주말에 왔던 곳이라 눈에 익는다. 동강마을 다리에 도착하니 멀리 함양버스가 보인다. 이곳을 3시 37분에 지나가는 버스가 달려온다. 나도 달려간다. 저 버스를 놓치면 한 시간후에 버스가 지나가고 그리되면 7시 막차를 타야할지도 모른다. 죽어라 달려가니 막 버스가 정차하고 두어명의 젊은이들이 타고 있어 뒤늦게 버스(2100원)에 올라탄다. 둘레길을 걸은 시간은 두시간 반이 조금 넘었나보다. 알고보면 둘레길을 거의 달린 기분이다. 그래도 걸었다. 한없이 한번의 쉼도 없이 마냥 걸었다. 엉덩이를 걸터 보지도 않고 걷기만 했다. 오늘도 주인 탓하는 내 다리가 안쓰럽다. 그래서 이제 함양, 남원, 구례 구간은 대충 마무리 했나보다. 다음은 하동과 산청이다.

효자각. 효자증조봉대부 동몽교관평산신영언지각.

지리산청정낙원 팬션? 콘도?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치는 정말 끝내준다. 이곳은 주변에 사슴농장도 있다.

운서마을 쉼터. 이번 구간은 정자와 화장실이 만들어져 편의시설이 잘되어 있다.

구시락재를 넘노라면 강아지 한 마리를 긴 줄에 매달아 놓아 밭을 놀이터 삼아 왔다갔다 한다.

동강마을 당산쉼터. 안내판을 보니 옛날에 김종직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지나가면서 쉬었다 간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함양구간을 걷다보면 중간에 화장실과 쉼터를 가끔 만날수 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쉼터도 아주 쉬어갈만한 곳에 필요한 곳에 잘 만들어져 있다. 공무원들의 많은 땀과 노력이 있었으리라.

서울행버스표를 구하고 터미널 근처에 식당에 들어가서 추어탕을 먹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