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신변잡기 주워담아

聖人君子

돗가비 2009. 9. 23. 19:58

유가의 가장 이상적인 인물은 자신의 도덕성을 사회에 온전히 드러낸 聖人이다. 달성하기 어려운 경지다.

 그 다음은 君子이다. 군자는 경학과 시문에 밝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남을 널리 포용하여야 한다.

 賢人은 지혜가 우월하고, 仁人은 품성이 자애롭다.

 고위 관료이거나 적어도 그렇게 될 후보일 때 士大夫라 하고,

관직의 뜻을 버렸을 때 處士라고 하며,

어지러운 세상에서 이념을 실현하는 의지가 굳셀 때 志士라고 한다.

 處士 가운데서도 현직 관료들을 현저히 능가하는 자격을 지닌 선비는 '山林處士'라고 부른다. 이때의 산림은 '새 짐승과 무리를 이루는 鳥獸同群'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도리를 힘써 실천하는'향촌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선비들은 마음과 일이 괴리할 때, 다시 말해 이념과 실제가 어긋날때는 '홀로 자기 몸을 선하게 닦음 獨善其身'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인간형이 처사다. 隱士隱遁者, 逸士逸民이라고도 한다.

단, 逸士逸民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자기를 소외시킨 선비를 말한다.

 우리 선인들 가운데 '처사'는 향촌 속에서 구도적 삶을 살면서 자신의 정신경계를 시문으로 드러내었다. 그들은 현실세계에 대한 우환의식을 지니되, 현실을 직접 변혁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기보다 개인적 . 인격적 자기수양에 몰입하였다. 또한 권력과 거리를 두고 한가롭게 유유자적하였다. 16세기 중엽에는 도학의 실천을 목적으로 삼는 처사들이 여럿 존재하였다. 서경덕. 이언적. 이황. 조식이 그들이며, 그들의 문하에서 또 많은 처사들이 나왔다. 조선 후기에도 처사적 삶을 산 인물이 많았다. 후기의 처사들은 반드시 '도학가'이고자 하지는 않았다 추구의 이상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처사들은 '세간의 대우를 받느냐 안 받느냐 遇不遇'하는 문제로부터 초연하였다. 다만 자칫 처사의 집안은 향촌에서 입지가 약화될 우려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넉넉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간간이 과거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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