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인생/백팔사찰순례하기

57. 옥천사(고성 연화산)

돗가비 2017. 8. 30. 21:55

170828. 맑음. 여름휴가에 고성을 지나가면서.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갔다. 서울로 올라 오는 길에 고성 옥천사를 들렀다. 고성 연화산 옥천사는 수년전에 백대명산을 싸돌아 다닐 때 하룻동안에 통영 미륵산, 고성 연화산, 마산 무학산을 하루에 당일치기로 돌았던 얼빠진 시절에 잠시 절 입구만 보고 왔던 기억이 있어 가족들을 설득하여 다시 찾았다.

옥천사는 역사가 깊고 이름 높은 고승들이 많이 배출된 사찰로 알고 있다. 특히나 요즘은 근처로 고속도로가 뚫려 찾아가기가 아주 싶다. 연화산을 오른 다음에 옥천사를 둘러 본다면 금상첨화이겠다.


옥천사는 고성군 연화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서 676년에 의상대사가 지었다. 그 후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중창이 있었다. 국가의 숭유억불정책이 가중되면서 한동안 도둑의 소굴로 변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1639년에 학명대사가 중창했다.
1657년에 용성화상이 다시 지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 경내에 달고 맛있는 물이 끊이지 않고 솟는 샘이 있어 절의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고 부르게 되었다.
옥천사는 임진왜란 · 정유재란 때는 구국승병의 군영 역할을 했던 호국사찰이다. 그 때문에 이곳을 점령한 일본군이 사찰을 불태우고 폐허로 만들었다.
옥천사는 1700년대에 이전에 비해 훨씬 큰 규모로 중창되었다. 대규모로 중창이 이루어진 것은 단순한 종교적 기능뿐 아니라 호국사찰의 기능까지 수행하면서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733년(영조 9)부터 1842년(헌종 8)까지 옥천사에는 340여 명의 군정(軍丁)이 기거하면서 왜구 · 일본군의 침공에 대비했다.

옥천사 창건연대기.

고성 연화산 옥천사 일주문.

옥천사 부도밭.

천왕문.

사천왕상.

자방루.

자방루(滋芳樓)란 ‘꽃다운 향기가 점점 불어난다’는 말이며, 불도(佛道)를 닦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자방루는 1764년(영조 40) 뇌원대사가 처음으로 지었으며 1888년(고종 25)에 중수한 누각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들보 6개 중 왼쪽에서 네 번째에는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비천상이 쌍방으로 그려져 있고 세 번째에는 비룡(飛龍)이 그려져 있다. 4개의 기둥 중 2번, 3번의 기둥머리에는 용두(龍頭)가 쌍방으로 조각되어 있다.
자방루는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단층 팔작지붕이다. 기둥 사이를 모두 두터운 문으로 막고 오직 앞마당과 면하는 전면만을 개방하여 큰 성채를 방불케 한다. 건물 내부는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러한 건물 형식은 단순히 불교신도를 위한 설법용이나 불구(佛具)를 두기 위한 공간이 아님을 보여준다.

임진왜란 직후 조정에서는 전략 요충지에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적 목적의 사찰을 건립했는데 옥천사도 그중의 하나이다. 군사용 회합장소로 넓은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사찰과 주변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 성채와 군사훈련을 위한 장소로 필요했을 것이다.

사찰의 누각은 대체로 2층 누각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으나 옥천사 자방루의 경우 처음 지을 당시 300여 명의 승군(僧軍)에게 군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단층 누각으로 건립했다.
승병 교육 및 지휘본부라고 할 수 있는 자방루 건물 정면의 넓은 앞마당은 승군들이 훈련하던 연병장이었다. 승군은 훈련할 때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었으며 동편장은 통정대부, 서편장은 판사(무관직 5품종)의 벼슬을 제수받은 스님들이 지휘했다.
이후 이 누각은 승려들에게 불경을 가르치고 초파일 같은 큰 행사 때 법화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범종각.

템플수행관

범종각.

대웅전

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옥천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사적기에 따르면 1745년(영조 21)에 창건된 것으로 앞쪽에는 왼쪽에 적묵당을, 오른쪽에 탐진당을 각각 배치하고, 맞은편에 자방루를 두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정면 3칸, 측면 2칸인 다포계(多包系), 외3출목(外三出目)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동향(東向)을 취하고 있으며 좌측에 적묵당(寂默堂)을, 우측에 탐진당(探眞堂)을 각각 배치하고, 맞은편에 자방루(滋芳樓)를 두어 아늑한 마당을 형성하였다. 대웅전 바로 앞에는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세워져 있다.

옥천사에 소장되어 있는 『옥천사사적기(玉泉寺事蹟記)』에 의하면 대웅전 건물은 1745년(영조 21)에 창건된 것이며, 이보다 앞서 1654년(효종 5)에도 법당이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탐진당.

자방루. 연화옥천

자방루내부 천장.

적묵당.

나한전.

명부전.

명부전 내부.

명부전 내부.

조사전.

칠성각.

옥천사 전각들

옥천사 전각과 연화산.

독성각.

산령각.


옥천각(옥샘)

팔상전.

자방루 앞 마당.

보장각

삼천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