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인생/백팔사찰순례하기

48. 청련사, 적석사(강화 고려산)

돗가비 2016. 4. 23. 09:48

160413.

고려산 진달래 구경을 가는 길에 들렀던 청련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416년(장수왕 4) 인도승에 의해서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인도승은 진나라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절터를 물색하였다. 고려 산에 이르러 다섯 빛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지(蓮池)를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꺾어서 공중으로 날려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이 곳에는 청련이 떨어졌기 때문에 청련사라 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창건시기를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절의 중창에 대한기록은 조선 후기부터 보여 지고 있다.

1821년(순조 21) 비구니 포겸(包謙)이 폐허화된 이 절을 중창하였고, 1906년 비구니 계근(戒根)이 법전(法殿)을 중수하였으며, 1909년선혜(善慧)가 산신각을 신축하였다. 그 뒤 비구니 정현(淨賢)은 1916년에 불상을 개금(改金)하고 감로탱화(甘露幀畵)를 조성하였고, 1919년에는 범종(梵鐘)을 조성하였으며, 1936년에는 전면적인 중수를 단행하였다.

현재 이 절은 비구니들의 수도처가 되고 있으며, 1821년의 중창 이후 계속 비구니들이 주석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산신각·종각(鐘閣)·요사채 등이 있으며,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청련사 앞 뜰

청련사 큰법당.


청련사 삼성각.


고려산을 걷다 적석사로 하산. 그 길에 적석사를 들르다.

적석사.

 적석사는 태고의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관음기도 도량으로 1600여 년 전인 고구려 장수왕 4년(AD416년)에 창건된 전통사찰이다. 사적에 따르면 인도에서 오신 천축조사께서 고려산 정상의 오련지(五蓮池)에서 연못에 핀 다섯 송이의 연꽃을 꺾어 신통으로 하늘에 날렸는데 그 연꽃들은 제각기 다른 장소에 떨어졌고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청련사, 백련사, 흑련사, 황련사와 더불어 적련사(赤蓮寺)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적련사는 현재의 적석사이고,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절 이름에 있는 적(赤)자로 인해 산불이 자주 일어난다고하여 이름을 적석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1544년(중종 39)과 1574년(선조 7)에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593년 묘정(妙淨)이 선당(禪堂)을 중건하였고, 1634년(인조 12) 계현(戒賢)과 삼창(三昌)이 불전(佛殿)을 중수하였으며, 1639년영윤(靈允)이 승당(僧堂)을 중건하였다. 1644년묘정이 누각을 중건하였고, 1705년(숙종 31)학균(學均)이 향로전(香爐殿)을 중건하였으며, 1707년보익(普益)과 승감(勝鑑)이 누각을 중수하였다. 그러나 1714년일연(一衍)이 사적비(事蹟碑)를 건립한 이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산신각·범종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없다.

적석사의 창건과 더불어 그 역사를 같이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대웅전 동편 돌 틈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감로정이라고 하는데 맛은 차고 달며, 나라에 무슨 변란이 있거나 흉년이 들면 물이 마르거나 갑자기 흐려져 마실 수 없었다고 사적비에 기록되어 있고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 열기 속에서 서해교전이 벌어졌던 때에도 물이 흐렸을 정도로 신비로운 우물이다.

절 왼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서해로 숨어드는 낙조를 구경할 수 있는 낙조대가 있는데, 경치가 아름다워 강화십경 중의 하나로 명성이 자자하며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그리고 고려 고종 39년에 완성된 팔만대장경의 경판을 적석사에 두었다가 백련사에서 전등사를 거쳐 해인사로 이송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적석사 뜰.

적석사 대웅전과 관음굴.

적석사 범종각.

적석사 감로정 앞의 연못. 꽃과 물고기와 한옥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