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04. 맑은 날씨에 폭염특보 내림. 혼자서 고생을 사서 하다. 오늘 구간은 현재 미개방구간이다.
<주천면 주천치안센터에서 ~ 산동면 탑동마을까지>
전북 남원시 주천면 주천치안센터→(1.5km 농로 오르막) 용궁마을→(2.5km 임도 및 산길 오르막) 숙성치→(1.7km 임도 내리막) 전남 구례군 밤재터널→(2.5km 농로 내리막) 산동면 계척마을 산수유 시목→(3.5km 농로 및 옛 포장도로) 산동면 원천리→(1.3km 도로 평지) 탑동마을
주천면 주천파출소앞까지가 지금까지 다듬어진 지리산둘레길이다. 오늘부터 걸을 길들은 아직 자치단체에서 준비만 하고 있고 정비가 되지 않아 사람들이 다니지 않고 있으면 길이 없어 힘든 구간이다. 여기 지명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이 지리산 시인으로 불리우는 시인 이원규님이 월간산에 올린 둘레길 답사 내용을 차용하였고, 길도 가능하면 이원규님의 답사했던 길을 따라 걸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어긋난 곳이 많이 있다.
09:45 주천파출소앞 출발-10:00 용궁마을 용궁교 -장안저수지를 끼고 올라 양계장까지-10:55 마지막 농막-11:20 숙성치 도착-12:30 계척마을 산수유시목-13:10산동면소재지 원촌리-지리산온천 가는 길의 탑동마을에서 철쭉꽃동산으로 올라야 하는데 길을 잘못 찾아서 15:00 관산리 정산마을 위 저수지로 하산.
주천파출소앞 둘레길 표지목. 지금까지 정비된 길의 마지막 표지목이다.
길이란게 원래가 있던 길은 없다. 사람이 다니고 동물이 다니다보면 생기는게 길이다. 한번 지났던 길도 지워지기 전에 다시 찾아가야 길은 남아 있는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 주천파출소 옆에서 마쳤던 둘레길을 이어가기로 하자. 주천파출소 앞 도로를 횡단하여 마을로 접어들었다. 이원규님은 길을 따라 육모정방향으로 더 진행하다 소나무숲길로 접어들라고 했는데 정해진 길이란게 없고 바로 옆으로 가는 거라 생각하고 그냥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을 잠시 지나치면 새로 짓는 교회당이 보이고 바로 용궁교이다. 용궁교앞에는 정자가 있는데 사람들이 쉬어 간지가 오래된 흔적만 남아 있다. 들길로 접어 들어서 용궁마을을 구경하자면 용궁마을에서 나오는 길에 이 용궁교를 건너야 맞을게다. 난 22KM구간인 오늘의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어지간한 곡선은 직선화 하기로 하고 걷는다. 이게 오늘 마무리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단초가 될줄은 모른체...
용궁마을은 소나무숲이 우거져 검게 보이는 산을 뒤로 하고 아늑하게 앉아 있다. 더운 여름이라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한눈에 봐서 예사 마을이 아닐성싶다.
용궁마을은 안용궁과 바깥용궁의 2개 마을로 구분되며, 해발 300m의 산간지대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신라 진성여왕 때 이 마을 동쪽에 있는 해발 1,050m의 영제봉에 세워진 부흥사에 고승과 선사들이 드나들며 휴양한 곳으로서 아주 오래전부터 ‘지상의 용궁’이라 칭하여 용궁리가 되었다고 한다. 뒷산 너머가 전남 구례군 산동면인데, 예전에는 숙성치를 넘어 구례로 통하는 주요 길목이었다. 주변 산세를 둘러보니 과연 바닷속 용궁처럼 조용하기 그지없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고려시대 후기의 효자 유익경(柳益逕)에 관한 얘기가 전해져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어머니 현씨(玄氏)가 병에 걸리자 유익경은 어머니의 똥을 맛보고 사생(死生) 여부를 가늠했다. 이 일을 왕에게 보고하니 동부녹사(東部錄事)에 제수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지금도 그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가 안용궁 앞 정문뜸 서산 유씨 감모재(感慕齋) 안에 있다.
용궁마을을 겉으로만 훝어보면 지나치는게 아쉽기만 하다. 용궁교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면 바로 장안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를 끼고 걷다보면 양계장 축사가 버티고 있다. 입구에 사람이 거쳐하는 집에서는 송아지만한 개 두 마리가 시끄럽게 짖어대는데 약간 겁이 난다. 얌전한 개들이 아니라 투견처럼 생긴게 여간내기들이 아닌게 아마 이런 산속에서 집을 지키자면 애완견으로는 안되겠다. 축사를 끼고 돌아서 본격적으로 숙성치로 오르는 길로 접어 든다. 울퉁불퉁 좋지 않은 임도를 따라 축사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면서는 마냥 이어질듯한 임도는 버리고 곧장 직선으로 산을 오르는 오른쪽 임도를 택한다. 이곳에서 느긋하게 오르는 임도를 따라 수백미터를 오르다가 억새가 우거진 숲을 헤치면서 길을 바로 드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얼마전에 많은 비가 내려서인지 숲속인데도 물이 고여서 발이 빠진다. 가시덩쿨과 억새에 거미줄까지 지나는데 어려움을 준다. 길을 바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 숙성치를 넘어서는 구간은 소나무숲과 활엽수림이 울울창창하다. 꽃과 나비들의 천국이다. 각종 야생화와 나비들이 날아다니는데 정말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소나무숲속으로 들어가자면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커다란 소나무가 있고 리본이 하나 달려 있는데 그곳으로 오른다. 오르다 다시 임도가 갈라지는 부분에 도착하면 대충 감으로 잡아서 완만하게 오르는 길 방향으로 오르면 오미자농장이 있는 농막에 다다른다.
주천파출소 길을 건너 우체국으로 앞으로 해서 용궁마을을 가는 포장도로를 따르면 용궁교에 도착하는 길이 내가 걸은 길이고 저기 소나무 숲너머로 해서 용궁마을 안으로 들어가 마을 구경을 하고 돌아나와 용궁교에 도착하는 길이 월간산에 올려진 길이다.
용궁교앞에 있는 정자. 관리가 되지 않아 허술하다.
장안저수지. 멀리 보이는 건물이 양계장이고 숙성치는 오른쪽으로 보이는 길로 오른다
마타리. 장안저수지에서 숙성치가는 길은 온갖 나비와 야생화 천국이었다. 소나무숲도 너무 좋다.
마타리(Patrinia scabiosaefolia)는 여러해살이풀로서 뿌리줄기에서 곧게 뻗어나오는 줄기는 150cm 정도이며, 밑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털이 없다. 잎은 깃꼴로 깊이 갈라져 있으며 마주난다. 꽃은 노란색으로, 늦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가지 끝에 여러 개가 모여 달린다. 식물 전체를 어혈이나 염증 치료에 쓰며 어린잎은 나물로 먹는다. 주로 양지바른 산이나 들에서 자라며, 동아시아의 온대에 걸쳐 널리 분포한다.
커다란 양계장을 돌아 올라가서 갈라지는 임도에서는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숙성치 가는 길은 생각과는 달리 차가 다니는 임도이다. 오미자농장에 다니는 길인가싶다.
노랑망태버섯.
망태버섯은 대나무 밭에서 많이 나는 버섯중 하나로 식용 가능하다. 노랑망태버섯의 경우 노란 망태를 떼어낸 기본체를 먹지만 흔히 먹는 버섯은 아니다.
주로 7~8월에 장마철이나 장마 뒤에 많이 나며 발생에서 소멸까지의 시간이 불과 몇 시간에 지나지 않는 하루살이 버섯이다.
버섯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냄새는 참으로 고약한 편이어서 암모니아 냄새 같은 안 좋은 냄새가 심하게 난다.
노랑망태버섯은 그 화려한 자태때문에 '버섯의 여왕'이라 불린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농막. 평소 사람이 거주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미자밭이 있다.
오미자농장이 보이면서 임도는 끝나고 길도 없어진다. 오미자농장에는 오미자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자연상태로 키우는지 물봉선과 잡풀들이 밭에 가득하다. 이곳부터는 사람이 다녔을법한 희미한 길을 따라 걸었다. 겨우 한 사람이 다녔을것같은 길이 보인다. 산등성이를 따라 걷다보면 숲이 우거지고 어둡다.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어 무서움이 들 정도이다. 지리산 반달곰이라도 나올 기세이다. 그리 걸어가다 보면 고깔모양의 인공물이 보이는데 이곳이 지리산숙성치 도사님의 거처이다. 선답자의 글에는 바위틈에 붙은 움막이라고 나오는데 작은 비닐하우스라고 봐야겠다. 이곳 말고도 다른 곳이 있는지는 확인해보지않아 모르겠고. 이곳 도인의 움막을 지나 다시 덩쿨을 헤치고 지나면서 어렵사리 오르면 숙성치에 도착하게된다. 숙성치는 정유재란 당시 의병과 왜군이 맞서 격렬하게 싸웠던 곳이다.
숙성치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그 풍광에 매료됐을 뿐 마을 사람들의 발음상 ‘숲성치’로 들리기도 했으니, 그저 숲이 성을 이룬 것 같은 고개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 뒤에 한자로 그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정수리를 후려치는 통쾌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숙성치는 한자로 잘 숙(宿), 별 성(星)으로 별들이 잠자는 고개였던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지리산의 별들이 잠드는 고개라니! 월출재니, 바람재니, 하늘재니 숱하게 많은 이름의 고갯길을 가 보았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이처럼 별을 노래한 고개는 없었다. 숙성치는 말 그대로 밤새 빛나던 별들이 새벽이면 슬그머니 찾아와 잠을 청하는 ‘지리산 별들의 여인숙’이었던 것이다.
농막과 오미자농장.
물봉선. 오미자농장 근처에는 물봉선이 밭을 이루고 있다.
물봉선.
물봉선은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봉숭아꽃은 인도가 원산지이고 물봉선이 순 우리꽃이다.
줄기는 붉은색으로 연하며 많은 즙을 포함하고 있다. 잎은 끝이 뾰족한 타원형으로 가장자리는 톱니처럼 되어 있으며, 어긋나고 잎자루를 가지고 있다. 여름에 나팔과 비슷한 홍자색의 꽃이 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 꽃차례를 이루면서 달린다. 이 때 각각의 꽃은 꽃자루가 옆쪽에 붙어 있다. 주로 산이나 들의 습지에서 자라며, 한국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끝이 말려진 긴 꿀주머니가 있다.
농막을 지나면서는 길이 없어지고 누군가 흔적만 남기면서 다니는듯한, 겨우 한 사람이 다닐수 있는 오솔길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최근 사람 발자국은 찾을 수 없다.
지리산 숙성치 도사님이 일을 보시는 화장실인데 문이 없다. 신기한것은 입구가 사람이 다니는 길쪽에 있어 일보는데 사람이 오면 다 보이게 생겼다. 하긴 누가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도사님의 거처. 인기척은 없고 가스통이 보이는 걸로는 살고 있다는 뜻이겠다. 거처 옆으로 해서 숙성치를 올라 간다.
도사님거처에서 숙성치 가는 길은 험난하다. 사진에 보이는 곳의 산딸기덩쿨과 망개덩쿨 그리고 물봉선밭을 손으로 헤치면서 지나야 한다.
드디어 숙성치에 도착한다.
숙성치에는 리본이 달려 있는걸로봐서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나보다.
숙성치를 넘어서면서 구례쪽으로 들어선다. 길은 약간 넓어지면서 완만한 경사길을 내려선다. 임도에 들어서면서 무슨 야영장이었던듯한 건물 몇 채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작은 포장도로를 택해 들어선다. 지나오는 길 아래로는 밤재터널이 통과하고 있다. 숙성치에서 밤재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견두지맥이라는 산길로 등산로가 이어져 안내판이 새워져 있고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이라고 한다. 길을 따라 내려서다 보면 구례군 계천리 계척마을로 들어선다. 계척마을은 산수유시목이 있는 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고 산수유축제도 열리는 곳이다. 계척마을 체육공원에서 시목이 있는 마을 안으로 가는 길가에 당산나무는 우람하게 서 있다. 전국에 여행을 다니다보면 자치단체에서 괜한 짓을 하고 있구나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이곳의 체육공원도 괜한 짓을 한 곳중의 하나일게다. 시목을 구경하고 마을입구로 나와 굴을 통과하여 옛날의 포장도로를 따라 마냥걷는다. 얼핏보기엔 가까워보이는 산동면 원촌리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이다. 폭염특보가 내린 이런날에는 정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주천면을 지나서 이곳까지 오는데 사람 구경하기가 어렵다. 더운 날씨에 누가 길거리에 돌아다니겠는가. 원촌리 다다르면서 갈림길이 여럿인데 이곳에서는 그냥 산동면소재지 원촌리로 들어가는 길을 택한다. 원촌리에 들어서서 중국집에 들어가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가격은 3,500원인데 맛은 별로이다. 면소재지라야 사람구경도 힘들고 눈에 띄는 가게도 보이지 않는다. 사거리 하나로마트에 들어가 생수를 사고 길을 물어 탑동으로 향한다. 작은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지리산온천 방향으로 길을 잡아 걷는다. 여기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탑동마을이다. 마을 앞에서 학생에게 철쭉꽃동산을 오르자면 어느 길이냐고 물어보니 처음들어보는 산이란다. 동네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내 직감을 믿고 가기로 한다. 동네 입구에 잘 생긴 당산나무 두 그루가 보이고 우리콩체험장이 눈에 들어와 길은 잘 찾아왔구나싶다. 산동면에는 마을마다 산수유나무가 지천이다. 탑동을 지나 지리산온천을 지나 더 가면 산수유마을이 있다.
山洞哀歌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 아홉 꽃 봉오리 피어보지 못한 채로
가마귀 우는 골에 병든 다리 절며 절며
달비 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
'산동애가'(山東哀歌)의 일부이다. 산수유가 노랗게 지리산 녘을 뒤덮을 때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노랫말이다.
1960년대 대중가수에 의해 노래가 불려지기도 했으나, 그 연원을 찾아보면 해방공간의 가슴 아픈 현대사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산동은 산수유마을로 널리 알려진 전남 구례군 산동면이다. 지리산온천관광단지에서 불과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다.
이 노래를 처음으로 불렀던 주인공은 백부전으로 알려져 왔다. 산수유 피는 봄 소식을 전할 무렵이면 신문들 마다 '빨치산 여전사 백부전이 부른 노래'라고 노랫말을 소개해오고 있다.
백부전은 실제 인물이었다. 산동면 상관 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열아홉살 여순사건 때 국군에 의해 총살당한 것으로 추적되었다. 부전은 집에서 부르던 이름이었고, 호적상의 이름은 백순례(白順禮)였다. 왜 그 노래를 남긴 것일까.
1948년 여순사건 당시 구례군 산동면을 비롯 황전·토지면 일대는 좌익군인들의 무대였다. 여수에서 반기를 든 좌익군인들이 이곳까지 이르렀기 때문. 특히 산동면은 군경과 좌익이 대치하며 피를 흘렸던 비극의 현장이었다.
해방공간에서 온 나라가 좌, 우로 갈렸었다. 구례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여순사건중 산동에선 이른 바 '좌익 명단'이 큰 회오리를 일으켰다. 어떤 식으로든 좌익단체에 그 이름이 오른 사람들은 혐의를 벗어나기도, 결백을 주장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뿐 아니라 '밤손님들'(좌익군인)에게 협조했다는 구실로도 죽임을 당한 것은 부지기수였다.
백순례의 조카가 살고 있다. 그가 할머니로부터 들었다는 사연은 이렇다.
"당시 미혼이었던 아버지와 고모(백순례)가 군인에게 함께 끌려갈 처지였다고 합니다. 끌려가면 바로 죽음이었으니 얼마나 절박했겠습니까. 고모가 나서서 '제가 갈 테니 오빠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집안의 대를 잇는 대신 자신을 희생한 것이죠. 고모가 아니었다면 제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백순례가 끌려가면 스스로 지어서 불렀다는 것이 바로 이 산동애가. 수많은 산동의 처녀들이 산수유 열매를 따려 이 노래를 이어받아 불렀다. 지금도 산동에 가면 들을 수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그 역사의 현장에서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탑동마을에 들어서면서는 집집마다로 들어가는 길이 나있어서 어느 길이 꽃동산으로 오르는 길인지 알수가 없다. 그냥 마을 끝나는 곳까지 가보기로 한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팍팍하게 한참을 걷다보면 두 갈래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늘의 결정적 판단착오가 일어난다. 곧장 가파르게 오르게 생긴 길을 택하자면 산으로 들어서겠거니 하는 마음에 왼쪽 길을 택한 것이다. 또한 이원규님의 글에도 밤나무밭 이야기가 있고 그길가에 밤나무가 있어 맞구나 하고 올랐다. 정말로 콘크리트 길이 한참을 경사지게 이어지는데 허벅지가 팍팍해서 걸음을 걸을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포장길이 끝나는 지점과 함께 길은 없어지고 만다. 고사리밭이 만들어져 있는 곳에서 길은 멈추고 갈곳이 없어 가시밭길을 헤치면서 산능선에 오르니 이곳은 도저히 가고자하는 길이 아니구나하는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감이 온다. 능선을 걷다 잠시 트이는 곳에서 멀리 보이는 산이 있어 쳐다보니 임도가 보이는게 그 봉우리가 철쭉꽃동산이겠구나 싶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까마득한 곳이고 오후 3시를 바라보는 시간에 그곳으로 다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산의 능선을 따라 가면 그곳에는 도착하겠지만 산속에서 밤을 지새울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 둘레길은 처음부터 부지런히 걸어야 하는 길이다. 주천에서는 산동면 지리산온천랜드까지 걸어와서 하룻밤을 자고 광의면 온당리까지 걸어가야 무리하지 않고 좋겠다. 탑동에서 온당리 난동마을까지도 9KM가 넘는 길로 하루 거리이기 때문이다. 암튼 밤나무밭 하나 믿고 올랐다 되돌릴수 없는 길이 되어버렸다. 가는 길에는 밤이 떨어져서 널려 있다. 그러고보니 오르고 보면 그 골짜기에는 온통 밤나무밭이다. 그러니 어디 길로 간들 밤나무를 만나지 않겠는가.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나싶다.
옛날부터 밤꽃 냄새는 남성의 정액 냄새와 같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청상과부가 엄동설한이야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면서도 수절할 수 있지만 밤꽃 피는 오뉴월에는 밤마다 봉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밤꽃 냄새 때문에 참으로 수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개는 비릿한 이 냄새를 싫어하는데 오죽하면 “밤꽃 냄새가 좋다고 하는 처녀는 이미 처녀가 아니다”라고 했겠는가.
산 능선을 가는 길도 등산로가 있다면 목적지로 갔을게다. 그런데 어디에도 길은 없다. 더운 날씨에 혼자서 무리하지 말자 하면서 내려서니 작은 저수지가 보이는데 지도에도 나와 있는게 이땐 반갑다. 저수지부터는 다시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이곳은 관산리 정산마을이다. 지리산온천랜드가 바로 옆에 있다.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구례읍내로 나와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숙성치 넘어 내려오다 보이는 견두산 등산로 표지판. 견두지맥이라고도 불리우며 구례군청에서 잘 다듬어 놓았다. 밤재에서 구례구역 근처 신월리까지 29KM로 지리산 주능선 종주와 맞먹는 거리이다.
산수유시목이 있다는 계척마을 체육공원. 이런 산골에 누가 운동을 한다고 많은 예산을 들여 농구장과 각종 운동시설을 해놨는지 의아스럽다.
체육공원을 지나면서 보이는 600년된 당산나무. 파랗게 살짝 보이는 곳은 개 사육장이다.
산수유시목.
무슨 꽃인지 궁금하다. 계척마을 산수유시목 근처 길가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작은 꽃인데 메꽃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아보이고 덩쿨에 앙증맞게 달려 있는데 이름이 궁금하다.
과거의 계척교. 계척마을을 연결해주는 다리였는데 지금은 바로 옆에 새로 다리가 놓여 있다.
계척마을 입구. 옆으로 남원과 구례를 잇는 산업도로가 시원스레 열려 있다.
산동면 소재지의 거리. 시인 이원규님이 말한것으로 보이는 산동오토바이센타가 눈에 들어 온다.
탑동마을 입구. 여기도 당산나무가 시원스럽다. 저 길로 들어선다.
우리콩 체험장.
탑동마을 정자.
탑동마을을 지나면서 철쭉꽃동산을 오르기 위한 갈림길. 여기선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저 멀리에 고압선철탑이 보이는데 마을부터 있는 철탑을 따라 걸으면 올라갈수 있지않나싶다.
갈림길 왼쪽으로 가는 바람에 산동면소재지를 보게 되었다.
저기 산봉우리가 철쭉동산이렸다.
관산리 정산마을로 하산하는 바람에 보게 되는 저수지. 작으나 깊어 보이고 산속에 있으면서 주변과 어울려 멋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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