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재의 야만의 시대]4대강에 어린 독재의 그림자
이명박 대통령의 집념이 대단하다. 국민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 환경운동가들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 지식인, 작가, 성직자, 자연을 아끼는 시민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수질 개선과 수량 확보, 홍수 예방으로 집약되는 4대강 사업의 명분은 허구다. 창조질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흔들림이 없다.
6.2지방선거 직후 라디오연설에서 대통령은 말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 국민의 목소리를 더 귀담다 듣겠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고집스레 다음 말을 덧붙였다. "4대강 사업은 생명 살리기 사업이다. 물과 환경을 살리는 일이다." 그리고 강바닥을 더욱 열심히 긁어냈다. 잇따라 6월말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사업 준설량이 1억m3를 돌파해 전체 공정의 20%를 넘겼음을 알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업임을 세상에 알리는 강력한 신호였다. 7.28재보선에서 승리한 여세로 채찍을 한층 거세게 휘두르는 형국이다. 4대강 사업에 흔쾌히 동조하지 않는 경남도와 충남도엔 공문을 보내 은근히 압박했다.
대통령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홍보와 설득의 노력이 부족해 국민들이 아직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23년 만에 나온 가톨릭 주교단의 고뇌에 찬 충고도 하찮은 노파심으로 여겼다. 과연 설득과 홍보의 문제일까. 최근 두 차례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4대강 논쟁을 애써 피했다. 이는 한나라당 스스로 이 사업의 당위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 아닌가.
4대강 공사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이들은,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깨닫는다. 환경 기준, 토목기술상의 안정성 등 전문적 식견은 잠시 잊어도 좋다. 멀쩡한 강바닥 암반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는 여주 신륵사 앞, 해마다 두루미들이 찾는 해평습지의 처참한 공사 현장, 아직 천연의 자태를 간직하고 있지만 결국 4대강 사업에 희생될 것이라는 걱정을 낳고 있는 안동 하회마을 아름다운 모래톱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남한강 바위늪구비의 세계적 희귀식물 단양 쑥부쟁이나 병산서원 앞 습지의 고라니가 삶터를 잃고 헤매고 있음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다. 중장비와 토목기술이 자연을 개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침묵으로 증언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댐을 헐고 자연하천으로 복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인위적으로 물길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웅변한다.
도대체 왜 대통령은 그토록 4대강에 집착하는가. 그의 단골 어록은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대통령은 자주 들먹이는 사업들이 있다. 경부고속도로, 새만금, 청계천 사업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비교의 대상을 잘못 골랐다. 그것들과는 사업의 심각성에서 차원이 다르다. 4대강은 이 나라 강토의 대동맥이다. 4대강 사업은 강토를 송두리째 파헤치는 일이다. 마치 백두대간을 깎아 평지를 만드는 일처럼. 4대강 사업의 무모성을 이해하는 데는 작은 것과 큰 것, 전체와 부분을 구분하는 단순한 산술의 능력이 필요할 따름이다. 토목기술자의 안목으로 국토를 멋대로 주무르는 행위를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성직자들의 뜻이다. 지엽적이고 부분적인 환경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성직자들은 자연의 섭리, 창조 질서를 부정하는 대통령의 철학적 빈곤에 절망한다.
무자비한 자연의 살육행위를 서슴지 않는 대통령의 집념은 그의 독선과 성과주의, 오랫동안 몸담았던 토목업계의 속도제일주의 등이 어우러져 다양한 독성을 내뿜고 있다.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4대강 사업 예산은 '성역'이었다. 대통령이 챙기는 사업이기 때문이었다. 국회는 스스로 그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속도지상주의의 폐해는 크다. 사업은 '대통령의 사업'임을 앞세워 초법적으로 추진됐다. 갖가지 편법과 불법이 저질러진 것은 물론이다. 속도주의는 노동자들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한 노동자의 죽음은 24시간 작업을 재촉하는 속도전의 희생이었다.
국민이 반대하는, 시대흐름을 거스르는 사업이지만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입을 벙긋한 흔적이 없다. 총리도, 국무위원들도, 참모들 누구 하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언론 역시 제 할 일을 포기했다. 4대강 사업은 KBS·MBC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른바 '조중동'도 대통령의 성역을 건드릴 엄두를 내지 않는다. 바야흐로 박정희, 전두환 두 철권독재 시절을 떠올리는 침묵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 언론을 등에 업고 무모한 4대강 파괴 작업을 태연하게 진행한다.
환경운동가들은 여주 이포보와 함안보에서 열흘이 넘도록 위험한, 그리고 외로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성장에 내건 펼침막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는 침묵의 시대를 향한 외로운 외침이다. 그들이 왜 이처럼 절박하고도 위험한 투쟁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한 스님은 스스로 몸을 살라, 대통령의 빗나간 선택과 '불통의 시대'를 처절하게 고발했다. 그러나 스님이 스스로 몸을 불사른 순간 그의 뜻을 주목한 언론은 없었다.
'문패'는 민주공화국이 분명한데 법이 유린되고, 국민의 뜻이 묵살되고, 대통령의 전횡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마비되고 있다면 독재의 뚜렷한 징후 아닌가.
프랑스 제국 초대 황제 자리에 올라 절대왕권을 휘두르다 쫓겨난 나폴레옹은 말했다. 자기변명에 바쁜 염치없는 말이긴 하지만 곱씹어 볼 만하다.
"공화국의 독재가 더 무섭다.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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